1990년도 이후 우리 나라에서 한해 동안 이루어지는 낙태는 공식적으로 150만건, 비공식적으로 20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1년에 약 60여 만명의 아기가 태어난다는 통계에 비추어 볼 때 낙태되는 아기는 태어나는 아기의 세배에 이른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왜, 우리는 낙태를 화두로 삼지 못하고 있는 걸까? 첫째로, 전반적인 생명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둘째는, 낙태를 하는 여성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떠넘겨질 뿐 사회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낙태의 통념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성들이 저지르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낙태는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 아닌 아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남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는 남의 일이 아닌 나와 관계 있는 일이다.

낙태를 경험하기 전에는 낙태하는 여자들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왜? 다수의 여성들이 뜻하지 않게 원치도 않는 낙태를 하게 되는 것일까? 사회 규범은 개인의 선택과 성행위에서 자기 관리를 가치 있게 여기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유교 윤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혼전 혼외 성관계 경험에서 비롯되는 낙태 건수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으나 우리 사회에서 낙태 문제가 공론화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낙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미약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여성의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결정이다. 낙태가 강요되는 상황에도 낙태 수술을 할 때에 적절한 도움이나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낙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피임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피임을 미리 준비하거나 요구하는 여자는 헤픈 여자라는 통념도 깨야 한다. 게다가 남성들이 콘돔 사용을 꺼리는 것도 피임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성관계의 변화와 여성 자신이 성을 금기시하고 자신의 몸을 억압하도록 체화된 습관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낙태하는 여성들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낙태 문제는 종교계와 여성계의 갈등, 생명권과 선택권의 마찰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낙태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여성들과 생명들이 낙태로 고통받고 죽어 가고 있다. 더욱이 낙태로 인해 사망하는 태아 가운데 다수는 '남아 선호사상' 때문에 희생되는 여아들이다. 인간다운 조건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태어난 생명을 인간답게 키워낼 수 있으려면, 여성 자신이 우선 결정권을 갖고 남성 중심적인 성인식, 성문화와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정민 (영광여성의 전화 문화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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