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위께 드리는 초추(初秋)의 서정-



사랑한다는 말보다 절실한 것은 보고싶은 마음이며 보고싶은 마음에 사무치는 것은 그리움이요 그리움 사무치는 가슴속엔 기다림의 미학이 자란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미학은 세상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자아의 본성이며 강인한 힘이 된다.

갯가의 은사시나무 이파리 하나가 파르르 몸을 떠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다. 그 것은 혼자서 감당해 낼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전율이며 그 전율을 견딜 수 없어 뒷산이 흔들리고 앞 강물도 일어나 물보라를 일으킨다.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들이라면 그 장엄과 감동을 어찌 시로 쓰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그래서 그 기다림의 미학은 혹독한 자본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천박한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하는 이 땅의 모든 시인들의 탄탄한 존재 의미와 가치가 가 된다.

그대들이여!

이제 다시 싱그러웠던 여름을 그리며 몸살을 앓아야 할 가을이 왔나니, 유난히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해 여름의 곤혹스러웠던 열대야도, 극성스럽던 모기도, 해변에서의 열정도, 밭고랑 사이의 지열(地熱)도 입추를 고비로 해서 한 풀 기가 꺾이는 계절의 절묘함을 우리는 또한 맛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찾아 온 계절과 함께 초추의 햇살에 반짝이며 흘러가는 맑은 강물 같은 시 한 편 보내나니........

내가 봄 강물로 흐르거든 그대는 가을날의 호수 되어 받아주게나

나는 피아노 소나타로 가리니 그대는 바이얼린의 흐느낌으로 맞아주오

나는 봄날의 주인공 오드리헵번이 되리니 그대는 조용히 미소짓는 가을의 히로인 잉그리드버그만이 되어주게

토인비의 계절이 봄이었다면 이 가을엔 쇼펜하우워가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우리가 봄날의 탐험가였다면 이 가을엔 나그네가 되자. 그리하여 깊은 사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



외로운 자는 소리에 민감하다./저 미끈한 능선 위의/쟁명한 달이 불러 강변에 서니,/강물 속의 잉어 한 마리도/쑤욱 치솟아오르며/갈대숲 위로 은방울들 튀기는가./난 나도 몰래 한숨 터지고,/그 갈대숲에 자던 개개비 떼는 화다닥 놀라 또 저리 튀면/풀섶의 풀 끝마다에/이슬농사를 한 태산 씩이나 짓던/풀여치들이 뚝, 그치고/난 나도 차마 숨죽이다간/풀여치들 도 내 외진 서러움도/다시금 자지러진다.그 소리에/또또 저 물싸린가 여 뀌꽃인가/수천 수만 눈뜨는 것이니/보라, 외로운 것들 서로를 이끌면/강 물도 더는 못 참고 서걱서걱/온갖 보석을 체질해대곤/난 나도 무엇도 마 냥 젖어선/이렇게 못 견디는 밤,/외로운 것들 외로움을 일 삼아/저마다 보름달 하나씩 껴안고/생생생생 발광(發光)하며/아, 씨알을 익히고 익히 며/저마다 제 능선을 넘고 넘는가./외로운 자는 제 무명의 빛으로/혹간 은 우주의 쓸쓸함을 빛내리

-고재종 시인의 "달밤에 숨어" 전문-

강구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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