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
정월 초면 산신제를 올리던
뒷재가 휑하니 뚫렸다
해골 눈구멍 같다
피아를 분별할 수 없는 총잡이들이
밤낮을 번갈아가며 해적떼처럼 넘나들던 고개
서울로, 부산으로
얼어붙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발길
차마 차마 쏟아내지 못한 설움이 통행료이던 고개
장에 가신 어머니는 그작 안 오시고
준지리꽃 물고 산그늘 쫓다 지쳐 잠들곤하던 고개
어젯밤 꿈길에도 발가벗은 내 허허벌판을 찾아와
해일같은 서북풍 막아주던, 산신령의 목뼈를
낯선 차들이 지신밟기라도 하듯 넘는다
이제는 누워서 하늘을 보거나 토방처럼 앉아서 쉴 곳이 없다
휴식을 잃은 나그네여, 남은 길은 直立步行의 강제노역일 뿐인가
금새 돌아오마고 두고 온 오솔길이
退妓로 늙어가는 첫사랑처럼
모른 체 하자고 그냥 멀리 떠나란다
차창 밖으로
아직도 누군가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라도 없었으면
손수건도 없이 내 눈물은 너무 억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