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날리는 꽃 향기, 지금 동편 마을은 봄.봄.봄

군서를 지나 서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군남 동간리에 다다른다.

고른 봄볕이 고인 들녘에는 풋것들이 이미 싱그럽다. 질긴 겨울의 꼬리는 이미 온데 간데 없고 봄을 키워내는 삼각산의 끝자락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때는 청명절, 한식을 앞둔 시기. 고추비닐을 손질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마치 밀레의 ‘만종’을 떠올릴 정도로 평화롭고 봄 바람은 훈훈하다. 구불구불하지만 고르게 포장된 마을길, 서편마을을 거쳐 뒷동산을 보듬고 돌아 이내 당도한 동편마을의 봄은 그렇게 한창이었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또 '찾아간 날이 장날'인지 길 안내를 부탁하려 했던 마을 이장님마저 멀리 출타하시고 없었다. 주변 가옥에서도 모두 논밭에 일나가 계신지 인기척이 없어 적막했다.

마침, 마을 회관 옆 삼성정이라는 마을 모정을 지나다 요행히 안진석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동편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70년대부터 마을 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우리 마을 개발의 밑거름이 돼주셨던 김석주라는 분입니다. 그분도 연안김씨 종손이었는데 종가를 지키고 농삿일에도 진력하며 우리 마을 안길농로를 정비하는데 큰 기여를 해주셨어요"

안씨는 그뿐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마을회관을 건립하는데도 힘쓰셨는데 마을사람들이 그분이 돌아가신 뒤 그분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건립된 마을회관은 73년 4월 25일, 준공식을 가졌고, 그 날을 기념해 마을 사람들은 매년 마을 잔치를 연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는 실제 마을주민들이 정성이 담긴 김석주씨의 공적비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어 길가는 나그네를 붙들어 놓는다.

모두 해봐야 100명 남짓, 43세대만이 모여 사는 동편마을은 일반 적인 밭농사 뿐 아니라 방울마토와 파프리카를 특색작목으로 대단위 시설 원예를 행하고 있는 농가들로 고부가 소득을 올리는 잘나가는(?) 마을이다. 시설원예(파프리카,방울토마토)든 고추육묘 배양이든 무엇이든지 영광군에서는 최초로 실시해 톡톡히 큰 이문을 얻은 이 마을 젊은 농사꾼들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연안김씨 고가에 들렀다. 연암김씨가는 16세기 중엽 직강공파 4대손 김영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를 따라온 이후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저택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와 서당과 안대문, 바깥대문은 물론 연지와 부속건물들을 갖춘 조선후기 지방 상류 가옥의 전형으로 알려져 유명하다.

특히 이 옛집 바깥대문인 삼효문(三孝門)은 현 주인인 김성태씨의 14대조 김진, 9대조 김재명, 8대조 김함의 효성이 지극해 나라에서 명정을 내려 세워진 솟을 대문이기에 더욱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연안김씨종택이 갖는 외형의 가치이상으로 이 삼효문은 마을주민들의 자랑스런 마음의 표상이 되어 서 있기 때문이다.

삼효문을 들어서자마자 굽은 허리를 간신히 펴며 낯선 사람을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무엇허게 나같은 사람을 찾는디야"

정양순 할머니였다. 그녀는 너른 종가의 고택을 지키고 있는 단 한 사람.

젊은 장정도 아니고 관청에서 배치한 관리인도 아니었다. 한적한 옛집 구석구석에 봄 햇살같은 훈기를 불어넣고 있는 사람. 그러나 정작 정할머니의 마음은 아직껏 꽁꽁 얼어붙은 겨울 숲 자락이다. 30년전 50대에 접어든 남편을 여읜 체 아들마저 잃고 친손녀딸 인희를 업동이로 키우며 악착같이 살아온 사반세기.

"생떼같은 자식(아들)먼저 보내고, 딸 셋 시집보낸 것들 모두 홀몸이 되어부렀어. 내가 흙이 돼야 다 끝나제"

정 할머니는 낡은 사진첩을 꺼내며 식구들의 행복했던 과거가 담긴 결코 땅에 묻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토해낸다.

고택을 홀로 지키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은 핏빛 꽃잎을 죄다 떨구고 선 정원의 동백나무마냥 처연하기만 하다. 썩어 문드러진 고목 밑둥이에 댓잎 한줄기 뿌리내리듯 그토록 가슴 아린 할머니의 봄은 언제일까? 아빠, 엄마를 어릴 적 잃어버리고 늙은 할미의 등에 업혀 자란 손녀딸 인희,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어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인희의 소식이 전해 올 때마다 할머니는 따사론 봄 햇살을 한 줌 한 줌 머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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