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뜨는 산골 마을 산하치 별곡

우리 군 서북끝자락, 고창과 서해안에 인접한 서해안 특유의 포구 법성.

법성하면 굴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굴비나 수산물로만 법성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일, 기자는 법성의 가장 동북변방에 위치한 월산 산하치 마을에 당도하여 '법성하면 굴비'라는 등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미맥 특작위주의 농업과 영세어업이 함께 존재하는 곳 법성, 해안을 접하지 않는 마을이라면 대개, 농민들이 둥지를 틀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당연한데 왜 이리도 새삼스러울까?

인도스님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에 법성항(당시 아무포)으로 최초로 불법을 전했다는 불연의 고장 법성은 고려이래 중국과의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지는 무역항으로서 문화교류가 매우 활발했고 조선조에는 한때 27개 고을의 조곡 7천석을 보관운송하던 개경 이남에서 가장 큰 조창이 있는 고을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서해 바다와 함께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영화를 누려온 이 법성을 농촌의 문화와 연관짓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 옛날 법성조창으로 세미를 운반하던 큰 길목이던 월산의 화장부락과 덕평부락 사이의 대로(大路)를 따라 잠시 달리다보면 덕평마을의 입석이 보이고, 덕평 마을을 가로질러 버스하나 간신히 빠져나올 듯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하치 마을 입구 '성재굴'이 나온다.

운구차나 상여와 같은 흉한 사물은 절대 출입시키지 않는다는 이 성재굴를 통과할라치면 수호신처럼 서 있는 장승 두기와 만난다. 97년 전남대 농촌활동대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세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이 마을 표지판인 셈이다.

이 성재굴을 지나자 이내 산에 가리워져 있던 민가들이 시선에 안긴다. 범바위산, 우각산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산골 냄새 풋풋한 자연 마을 산하치. 동쪽 멀리 고성산에 해가 떠오르면 그 햇빛이 난정(暖井)골을 통과해 초포산 등성이로 무지개를 그려내는 아름다운 산골 마을 산하치는 그렇게 새 둥지마냥 틀고 앉은 채 비밀스럽고 아담한 제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22세대 70여명이 도란도란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산하치. 봄비가 부슬 부슬내리는 오후, 이 마을을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지난해까지 마을 친목회장을 맡았던 고 황인수씨의 장례 마지막날. 고인을 선영하에 모시고 돌아온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피곤에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불청객이었을까? 마을회관 문을 죄지은 듯 빼꼼이 열고 들어가 음식상 하나에 둘러앉은 남자 몇 분에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뒤늦게 찾아 온 조문객으로 알았는지 여러 말 묻지 않고 소주 한잔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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