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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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부모의 마음은 깊고 깊다



전생에 가장 큰 빚을 졌던 관계가 부모 자식 사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란 그만큼 마음이 많이 쓰이는 존재이다. 내리 사랑이라고 아무리 주어도 억울하지 않으며 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이 된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던가?

그래서 자식은 담담하게 바라보기가 어렵다. 나이 들어 자라면 자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의 둥지를 떠나려 하는데 부모는 미련이 남는다. 다 자란 자식도 어려 보이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자식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도 자식 앞에서는 정에 이끌린다.

건강한 자식도 그러한데 자식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래서 장애인의 부모는 늘 아픔을 감추고 산다. 남들이 다 누리는 작은 행복에도 자주 감격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식의 장애 탓으로 그들은 삶을 보는 더 깊은 눈을 지닌 듯 하다. 마음은 겸허하고, 느낌은 훨씬 더 진지하다. 장애인 부모들의 모임에 가면 삶에 감사하는 숙연함이 느껴진다. 크고 아픈 상처는 작은 불편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병신 고운데 없다'는 우리의 속담은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살기 힘든 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서구의 사회는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는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어디서나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비교적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산다. 장애자일수록 독립적이며, 끊임없이 자신감을 확인하고자 도전한다.

장애인이 당당하게 혼자 설 수 있도록 먼저 우리들의 시선을 바로 잡자. 그들이 누려야 할 삶의 기회를 인정하고 그 손을 잡아주자. 입시 때마다 장애자가 불이익을 호소하거나, 입사시험에서 불리하게 대접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주차장에 형식적으로 장애자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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