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주민의 소망 걸린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고장

노령산맥의 기개를 이어받아 태청산을 이루고 그 신령한 정기로 뻗어 내린 월랑산 한자락. 물 좋고 산 좋은 데를 찾아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어 터를 이루어낸 곳, 대마면 남산.

1931년, 당시 23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제방공사를 했다는 남산저수지의 청정함만큼 태청산은 아직도 그 푸르름과 훼손되지 않은 생태환경을 보존한 채 대마면를 거느리고 있었고 남산은 그 품안에서 '제일 남산'의 태청가를 불러왔다.

면 소재지에 위치한 농협 마트 맞은편으로 난 묘량방면 도로를 따라 2분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면 마을 입구를 나타내 주듯 우람한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남산 마을 초입. 100여년전 까지만 해도 12개의 당산나무가 있어 정월대보름이면 일일이 그 나무들을 돌며 12당산제를 올렸던 남산마을의 상징은 역시 아름드리 느티나무 당산이 아닐까?

13일 오전, 한참 모낼 준비를 하는 농번기 때라 반나절을 뚝 때내어 시간을 할애함이 쉬운 일이 아니건만 남산노인정엔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어른 서너분이 이른 아침부터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싶다. 그들 모두 기억을 하나 하나 더듬으며 마을을 소개해 준다.

남강사에 배향된 선인들의 면면과 당산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마을발전에 대한 고민 등등...

김기남 이장은 "예전에는 12당산제를 다 지냈지만 지금은 신체(神體)인 당산 나무들이 모두 존재하지 않아 중남에 있는 한그루의 당산나무에 합제(合祭)를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자리에 함께 한 이도범 노인회장은 "마을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성재 신응순선생과 영조시대 '농포문답'을 저술해 영조로부터 은잔을 하사 받은 호영재 이대규 선생을 배향한 남강사가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남산 마을에는 현재 50호에 97명의 농민가족들이 남아 흙과 더불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 논농사와 밭농사에 의존하지만 이진범, 김공도, 오석기씨 등 서너명의 이 마을 젊은이들은 농가 소득 측면에서 원예 작목 중 상위에 속하는 카네이션 등의 화훼 농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입절화들이 판을 치는 화훼 시장에서 투자한 만큼 큰 재미를 보지 못해 걱정은 일반 농민들이나 매한가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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