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
고봉주/영광신문 편집위원



명 죽이면 살인자, 만 명을 죽이면 영웅


J.로스탕이라는 철학자는 ‘자전적 명상록’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는 살인자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이다. 모든 사람을 죽이면 그는 신이다.”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한 사람을 죽여라, 넌 살인자가 된다. 백만 명을 죽여라, 넌 왕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영화 ‘블레이드3’에서 악마로 나왔던 드레이크가 한 말이다.


소련의 공포 정치가 스탈린 역시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다.’라며 자신의 인민학살을 합리화 했다던가?


인도의 한 지방에도 살인에 대한 믿기지 않는 악습이 있었다고 한다.


한 명의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어 죽임을 당하지만 60명 이상을 죽이게 되면 죄를 면하게 된다는 ‘믿거나말거나’ 같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 한 여인이 살인자로 몰려 경찰에 쫓기면서도 결국 60명을 채움으로써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을 죽인 영웅, 수백만을 죽인 살인마(殺人魔)


역설적(?)이게도 전자와는 정 반대인 경우의 영웅과 살인자가 있다.


만주 하얼빈역에서 침략자 이또 히로부미를 암살함으로써 우리 한민족의 울분을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는 한 사람을 죽이고도 우리의 영원한 우상이자 영웅이 되었다.


반면 2차대전 당시 600만 명의 무고한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두고두고 살인마의 표본으로 낙인이 찍혔다.


야욕에 찬 정복전쟁을 벌임으로써 많은 수의 사람들을 전쟁터에 끌어들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서도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알렉산더, 징기스칸,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는 영웅호걸 중에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을 죽였거나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전쟁군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혹자는 살인자와 영웅과의 차이점을 이렇게 비교하기도 한다.


살인자가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어떠한 책임감이나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한 복수심이거나 사적인 감정절제의 실패로 인한 충동적인 살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만 명을  죽인 영웅은 그 많은 인명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지켜야할 가치관이나 책무, 또는 역사적인 사명감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설령 그 주장이 매우 합당한 논리를 지녔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보편적 사고를 성문화한 헌장(憲章)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데 있어 누구는 살인마로 또 어떤 이는 영웅으로 추앙을 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가 과연 바른 역사라는데에는 선뜻 동의를 하기가 어렵다.    


 


사람값(사람의 값어치)


32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 버지니아대학 총기난사사건으로 전 미국인들은 물론 우리 한국민들의 가슴에 까지 큰 상처를 남겼던 재미 한국인 2세 조승희씨는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까?


영웅, 아니면 살인마?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으로부터 우리나라나 우리 동포들이 행여 불이익이나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이나 알아서 기려는 사대(事大)심리의 발로였을까?


조승희씨의 총격사건 후 우리나라가 보여준 행태는 피해자인 미국인들이 보기에도 이상하리만큼 파행적이었다.


대통령이 3번씩이나 사과를 했으며 그 것도 모자라 전 신문과 방송이 실시간으로 현장중계와 함께 대표 한국인들을 출연시켜 미국과 미국민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는 방송을 내 보냈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미국인들이나 버지니아 대학의 조씨 급우들은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국내 일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한국민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살인마(?) 조승희씨의 내면을 이해해 보려는 절제된 이성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승희 사진을 보고 '아, 교정에서 몇 번인가 마주쳤던 그 말 없던 아이구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승희에게 다가가 어깨를 치며 '야, 밥 먹으러 가자'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말 없는 외톨이를 만나면 입을 열 때까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들겠습니다. "라고 한 급우가 말했다고 전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현장인 노리스 홀 잔디광장에 놓인 조승희씨가 포함된 33명의 사망자 추모석에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꽃과 편지가 수북이 쌓였는데 조승희씨의 추모석에 놓인 편지 한통이 살인마를 배출한(?) 나라 우리 한국인들의 가슴을 뭉쿨하게 해주고 있었다.


"승희야, 난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이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네게 손 한 번 내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 줘. 이제 저세상에서라도 너를 옥죄었던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히 지내길 바라"


스텐리라는 한 학생이 쓴 편지이다.


또 한 학생은 자신들을 탓하고 있었다.


"수렁에 빠져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며칠, 몇 달, 몇 년을 갇혀 지냈다고 생각해 보라. 승희가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그에게 도움의 손을 뻗치지 않은 걸 뉘우쳐야 한다. "


 


그리고 개값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다음 날, 이라크에서는 미 대통령 부시의 전쟁놀음에 무고한 목숨을 희생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버지니아텍 희생자의 몇 배에 달하는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자살폭탄테러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세계 언론의 시선은 버지니아텍사건에 맞춰져 있었으며 이라크인들의 처절한 죽음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영웅법칙이 통용되고 있었을까?


똑 같은 죽음을 두고도 어는 죽음에는 세계인들의 애도물결이 줄을 잇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이웃집 개의 죽음보다도 못한 말 그대로 개 같은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네 신문방송의 메인페이지를 장식하며 온 국민들의 귀와 눈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의 비뚤어진 자식사랑이 화제다


잘 살고 못 산다거나 잘 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이다.


나는 부자라거나 잘 났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소중하다는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이 색바랜 영웅법칙과 맞물려 아직도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인들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도 그리고 우리 형제의 나라 북한동포들의 목숨도 소중하고 존귀하기는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국인들의 희생을 애도하기위해 전 국민의 귀와 눈을 멀게 했던 그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억압받고 소외받는 인류에게 쏟아 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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