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영광방송제작국장

개장국과 견권(犬權)

나라가 약소하다 보니 별놈의 간섭을 다 받는다. 자기네들이 언제부터 문명국가였고 우리는 언제부터 미개국이었단 말인가. 하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횡설수설 몇자 적어볼까 한다.

문명국이라 내세우는 자기네들의 알량함은 무엇인가? 단지 물질문명의 조금 앞섬에 근거를 두고 휘두르는 어설픈 망나니의 칼이 아니던가. 예부터 문명이라 함은 근본이 정신에 있으니 몇 배는 앞서가는 동양 특유의 정신적 우월성 문명을 보유한 우리 민족이 참다운 문명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한가 말이다. 남의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선진 문명국의 할 짓인지를 묻고 싶다. 혐오스러운(?) 달팽이 요리와 사료를 잔뜩 먹여 부풀린 거위간에 포도주 한잔 걸치고 점잖게 나무라는 것이 겨우 남의 나라 고유 음식 문화라니 참 한심하기도 하다. 우리쪽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각 민족마다 판이한게 먹걸이 문화일진데 그냥 주눅이 들어 잔뜩 움추려 들어서 전전긍긍인 모습을 보노라니 브리지드 바르도 보다도 더 미운 것이 우리 자신이다. 왜 떳떳하지 못한가. 전국 료리사협회 평양시 창광지회 단고기국집 분회 김정희씨처럼 왜 당당하지 못한가 말이다. 뒷골목으로 숨어 들어가는 우리의 전통이 너무도 터무니없는 원인에서 야기되고 있음은 정말이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의견비(義犬碑)가 세워진 동네 어귀에도 개고기 집은 있으며, 의견제(義犬祭)까지 열고서도 이튿날이면 개장국집을 찾는 우리의 현실은 암만 감추려고 해도 낭중지추(囊中之錐)일 뿐이다. 돼지는 돼지답게, 개는 개답게 최후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닌가 말이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매미 요리를 즐겼고, 원숭이 골, 송아지 태반, 말고기 내장, 심지어 곤충까지 거침없이 먹어대는 민족들이 하고많은데 왜 하필 우리의 개고기 문화만이 문제가 되는가.

뉴기니에서는 돼지가 가장 선호하는 애완 동물이고 총애를 받는다. 보아뱀에서 악어까지 애완 동물도 다양하기만 하다. 그런데 다른 것은 먹든 죽여서 가죽을 벗기던 괜찮고 개고기만 혐오식품이고 애완 동물이니 먹어서는 안되고 먹으면 바로 미개국 취급이니 이런 우라질 일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이것은 편견이요 착각이요 오만이요 무식이다.

중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리가 두개 달린 것과 네 개 달린 것 중에서 못먹는 것이 딱 두개 있다. 하나는 사람이요, 하나는 책상이다.”라고 말한다.

옛날부터 농경 사회였던 나라에서 영양보충은 필수였다. 잭 런던(J.London)이 말하는 별미가 아닌 것이다. 애완동물 이전에 고단백질의 음식일 뿐이다. 광동성에서는 향육(香肉)이라 하여 부위별로 갖가지 요리가 개발 되어있다. 우리 보다 훨씬 발달된 개고기 문화를 갖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살은 항시 우리 나라다. 88올림픽때 그렇게 시끌벅적하더니 이번 중국 올림픽 결정시엔 어느 한놈 걸고 넘어지는 놈이 없다. 약소 국가의 설움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영 찝찝하다. 하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여름이 오면 개고기를 먹을 것이다. 이젠 국가에서 도살권을 허가해 주고 도장 찍힌 개고기를 먹게 되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래 개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백중날은 머슴의 생일이자 두레의 ‘호미씻이’ 날이기도 하지만,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고통을 받고 돌아가서 방황하는 어미의 넋을 달래려고 부처에게 부탁해 개로 환생한 날을 기리는 날이다. 즉, 우란분재(盂蘭盆齎)를 베풀고 넋을 달래니 개가된 어머니가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났다. 이것을 기리는 날에 우리는 개를 잡아 먹으니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의학자 이영종교수는 개고기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 자체가 불(火)이다. 게다가 삼복은 경일(庚日)로 화기가 왕성하면서도 쇠(金)에 해당한다. 따라서 복날은 불이 쇠를 극하는 화극금(火克金)이므로 쇠를 보충하기 위해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 개에게 쇠의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열치열(以熱治熱)인 것이다.」

영양적인 면에서도 개고기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아미노산 조성을 가진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 기름을 찬물로 씻으면 엉겨 붙지만 개고기는 그대로 씻겨 나간다. 그리고 같이 섭취하는 채소가 마늘, 깨, 양파, 부추, 깻잎 등이고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음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도 "성이 따뜻하고 독이 없고 오장을 편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등등 끝이 없다. 18세기 초반까지 개고기를 먹어대던 프랑스인들이 이런 좋은 음식을 미개인 운운하며 몰아 세우니 어이없음이 극에 달한다.

우리에겐 신석기 시대부터 길러오던 가축이요 먹어오던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더러 그 문화를 버리란다. 그런다고 우리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한다. 줏대 없음이 이정도면 가히 가관이요 하늘이 웃을 일이다. 개가죽이 없으면 우리의 전통 악기인 장구는 무엇으로 만들며 프랑스인들이 신명나게 즐기는 사물놀이는 무엇으로 하란 말인가?

그리고 개에게도 견권(犬權)을 찾아 주어야 한다. 미끄러운 방바닥만이 세상의 전부요, 억지로 털을 깍아 이리 만들고 저리 물들이고 발톱은 깍여서 기능을 잃고 송곳니는 잘려 나가고 안그래도 털옷을 입어서 더워 죽겠는데(원래 개는 한대지방 출신임) 또 옷을 입히고.... 이 보살핌은 이미 보살핌이 아니고 개에게는 수모요 학대이다. 개에게는 흙에서 뒹굴고 맛없는 사료에서 벗어나 찌꺼기 음식의 효율적인 처리와 함께 이루어지는 자연식을 하고, 마지막엔 가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주인의 솥에서 생을 마감해야하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애완과 가축용을 전혀 구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우리의 황구를 이야기 함이다. 애완견은 어차피 평생 사람의 손에서 고문과 수모와 학대를 받아야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으니 황구의 운명보다는 몇배는 비참하다고 보면 될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유럽에서 중세부터 귀부인들이 왜 개를 안방으로 끌여 들였는지를 한번쯤은 알아보자. 끝으로 다산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農家月令歌」8월조를 한번 읊어 보자.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갈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조선 사람들이여 !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개장국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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