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견작가의 위엄이랄까? 아니라면 타고난 그녀의 감성이 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아름답지만 가슴아픈 성장과정들을 얼마나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려가며 전개해 나갔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내 가슴이 내려앉는다. 박완서님은 1930년대에 태어나 민족의 격동의 세월들을 뼈저리게 체험해온 역사의 산 증인이랄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녀가 겪어온 인생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에 이르고 6.25를 겪으며 경험했던 그녀의 삶과 소설의 뿌리라 할 만한 자전적 체험소설이다.



지금도 지구 어느 한켠에선 민족간, 국가간, 문명간, 수많은 충돌들이 일부 기득권층 지식인 약삭바른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되며 이유도 모른채 항거할 힘조차도 갖지 못하는 어린아이나 노약자 힘없는 민중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든지 선동꾼들에 의해 노리개밖에 되지 못하는 야속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우리 민족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한이 맺힌 집안이 작가의 집안뿐이겠는가. 전쟁과 이데올로기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수많은 이들의 소박한 꿈들이 파편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쓸쓸한 삶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겠는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은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들과 성장해가며 겪어야 했던 사회적 혼란의 편린들이 뇌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녀의 여러 작품곳곳에 흔적들이 묻어 나왔고 또한 그 시절의 풍부한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은 인생의 소금이 되어 그녀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 작품속에선 인생의 험난한 굴곡을 겪어왔음은 물론 그녀의 몸짓에서도 항상 자신감이 없이 뭔가 골몰하며 인생의 상흔들을 힘겹게 이겨나가는 듯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본다.



그녀의 마지막 글귀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이처럼 작가는 처절한 나머지 차라리 처연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

다.

(한길서림 김 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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