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지향의 文人들에게! 이당재(홍농출신, 전 영광경찰서장)

해가 바뀌기 전후에서 우리 문단에 감투열기가 들끓고 있는 분위기다. 1월14일로 한국문인협회 임원진 선거일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름은 익히 알지만 면식도 없고 친분이 거의 없는 관계인데도 평소 친한 사람처럼 저서도 보내주고 자기 소개도 한다. 심지어 전화로 한국문단을 개혁하겠다며 노골적인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는 후보도 있다. 선거운동원인지 알 수는 없지만 특정후보에 대해 지지를 호소하고 한 표를 부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작은 골짜기에 일시에 바람이 몰아치면 강풍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 문단의 중진들이 감투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문단이 필요이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문인으로서 어떤 감투로 명예를 얻는 것보다는 탁월한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작가로서의 명예를 얻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어야 한다. 일찍이 막스베버는 이런 것을 두고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따끔하게 경고하였다.

바람직하지 못한 이런 감투풍조는 어김없이 일부 지방문단에까지 오염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방문단에 한 두 사람의 감투싸움으로 파벌이 형성되고 이합집산을 초래하여 지방문협이 두 동강이 나는 꼴불견으로 일반인들의 코웃음을 사고 있는 데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한다. 마치 문단의 감투 하나쯤 얻는 것이 문학으로의 성숙이나 우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거나 심지어 향후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얄팍한 계략으로 이용하려 드는데는 실소할 수밖에 없다.

타락으로 향한 감투의 질주처럼 보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느 시인 스님의 깨달음을 주는 선문답(禪問答)이 생각난다. 어느 날 스님이 추위를 참다못해 목불(木佛)을 불쏘시개 삼아 불을 쬐고 있었다. 다른 스님이 무슨 짓이냐고 따지자 "사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목불에 웬 사리냐는 다그침에 이렇게 답했다는 얘기다. "사리 없는 목불은 몽땅 불쏘시개를 해야겠구먼." 이 반어적(反語的) 우의(寓意)가 사람의 본연의 자세에 대한 선승의 매질 같은 인식의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높이 멀리 서서 잡박(雜駁)한 저들을 바라보노라면 「아직은 좀 비릿하다. 설익어서 그렇겠 지. 좀더 발효시켰으면…」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가슴으로 다가와 눈을 감고 말 때가 있다.

이 퇴계(李 滉) 선생은 칠십 평생 79번이나 관직을 사양할 정도로 감투와 출세에 초연했지만 감투와 아예 담을 쌓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고 마지못해 조정의 부름에 응하기도 했다. 요새 세상에 이런 말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못난이 소리로 비웃으면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독재가 청산된 지금 또 다른 권력의 독주를 질타하고 있는데도 금권과 감투가 결탁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방부제마저 썩어 문드러진 지독한 현실이지만 우리 먹은 사람들끼리라도 문학의 진실성으로 현시도피가 아닌 현실에 대한 바르고 강한 정신적 대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단에서 만이라도 민주주의 최악의 방법을 취하지 말고 문학작품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원로를 추대하는 방식을 찾는다면 오늘의 글쟁이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부귀는 뜬구름 같고 명예는 나르는 파리와 같다."고 퇴계는 읊조렸다. "자기수양과 지식이 부족한자가 공직(감투)을 맡는 것은 국가사회의 녹을 축내는 도적질이나 다름없다. 깨끗한 마음과 도의심으로 매사를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했다. 이 교훈은 5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진리는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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