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수를 써 속이려 하지만 소용없다는 의미를 담은 고사성어가 있다. 여씨춘추 (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범씨 집안이 망하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범씨 집 종을 짊어지고 달아나려 하지만 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짊어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치를 들고 가 그 종을 부수어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망치로 부수자니 종소리가 날까 두려워 자기 귀를 막고 종을 부수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들리지 않으면 남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귀를 막고 종을 훔쳐간다는 뜻을 지닌 고사성어가 엄이도령(掩耳盜鈴)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잘못을 아는데 얕은 수를 써서 남을 속이려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멀게는 몇해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탄로 날 거짓말에서부터 가까이는 윤락업 비호로 철퇴를 맞는 경찰 공무원들의 구태와 부패의 사슬, 고위 정치인들의 권력형 불법 대출 등 하루가 멀다하고 개혁의 언저리에서 쏟아지는 비리의 단면들은 보노라면 掩耳盜鈴이라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바라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국민이 정치에 대한 희망의 비젼을 접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국회의 파행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 부끄러운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얼마나 더 버텨야 하나... ‘그래, 세상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뿐 진정으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풍조가 사회전반에 팽배해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사회 각 분야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직업이 정치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다른 어느 직업보다도 철저한 공복정신과 희생정신이 요구된다. 공무원들의 역할과 위상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을 그 의미대로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정치와 행정이 권력의 양면처럼 선망과 증오의 대상에서 벗어나 정의와 도덕과 청렴으로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비젼을 제시하는 그런 모양새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 것이다.

< "구석은 모든 것이 모이고, 모든 것이 떠나는 곳이다. 그대! 이제 구석에 등을 대고 넓은 바깥으로 향하라">는 어느 글귀에서처럼‘구석’이라고 생각되는 작금의 부정적인 현실에서 늘 바른 정치와 넉넉한 삶의 여유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 올 참 희망의 메시지가 아쉽다.

희망의 참뜻은 절망 속에서 더 뚜렷해진다고 한다. 절망의 현실이야말로 참 희망의 꿈을 낳고,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의 밝기가 더 명료해지듯이 희망도 절망 속에서 그 값이 더욱 빛난다.

두 눈 부릅뜨고, 귓구멍 또한 활짝 열고 엄이도령(掩耳盜鈴)을 일삼는 자들 앞에서는 더욱 준엄한 눈빛을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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