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이면 역사의 증거처럼 선명하게 들려오는 곡이 있다. 다름아닌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

80년 핏빛 오월, 전두환 군부의 정권찬탈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의 갈망이 40리 밖 광주에서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피어오른 지 어느덧 20년이 지난 오늘, 아스라이 잊혀져 가는 노래일지도 모를 이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감동적이다. 그 속에는 몇 백년이 흐른 뒤에라도 그날을 일깨우는 먼저간 사람들이 남긴 준엄한 역사의 진리가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세월이 흘러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웠노라’는 항쟁의 진실이 반드시 밝혀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5월 무고한 민중의 신음과 탄식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로 성년이 됐고, 광주민중항쟁 또한 한국현대사 속에서 성년식을 치렀다. 그만큼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인간에게 망각의 특권을 주었다. 망각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체험들과 인식을 부담없이 받아들이며 산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교훈도 있다. 쉽게 잊어버린 채 망각의 강에서 허우적대다 조건 없이 손을 내미는 한국식 용서와 화해를 숫하게 봐왔다. 한편 어떤 정치인들은 성스러운 민중의 피로 세운 민주의 역사를 가지고 게임을 즐긴다.‘역사 바로세우기 재판’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두환씨나 노태우씨 등 쿠데다 세력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주었던 YS시절, 광주는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안았었다.

16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5.18 망월 묘역에 들러 참배했다. 그와 그의 당은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합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라고 사족을 달았다. 이 총재는 결국‘호남과의 화해’라는 그럴싸한 정치적 목적을 가시화하기 위해 망월동으로 향했을 뿐이다. 광주가 더 이상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망각의 강에 버리고 방치해도 좋을 일상의 가십거리가 아님은 이제 길 가는 삼척동자도 안다. 성년을 거친 ‘오월 광주’는 전남 광주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쌓아 온 저항과 자긍의 한 표상으로 온 국민 나아가 전 인류에 의해 존중되는 자랑스런 고유명사가 되었다.

백인 정권에 맞서 투쟁하며 결국 흑백통합을 이뤄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참혹했던 과거를 수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그 과거를 기억해야만 한다. 용서가 필요하면 용서해야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억함으로써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의 오월은 결코 망각의 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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