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이야기



영산김씨 세장비(永山 金氏 世葬碑)



이 비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일제 때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김철 선생이 1919년 봄,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왜경들의 눈을 피해 입국한 뒤 군민들의 협력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 다시 출국하면서 비문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종중(宗中)에서 같은 해 10월에 이 비를 세웠는데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영광경찰서 일본인 파동(坡東)주임과 형사 오영선(吳泳善)이「有朝蘚國 영산김씨···」라

쓴 비를 발견 정(釘)으로 '조선국' 3자를 짓이긴 뒤 넘어뜨려 파묻었다 한다.

광복후 김씨들은 다시 이 비를 찾아 100m 가량 위쪽 길가에 세웠고 1984년에는

비 곁에 이현종(李鉉淙) 찬문(撰文)의「有韓鮮國氷山金氏世裝碑」를 세웠다.

1984년 이 세장비 곁에 김철 선생 기념비를 세웠다. 이 비문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쳤던 김철 선생의 주체성과 자주독립정신이 서려있고 3·1만세운동 후 검거선풍이 일었던 그 불안한 시대에 민족자주성을 보인

보기 드문 비문이다. 영광 불갑사 입구 대형 주차장 부근, '국무위원 일강 김철선생 기념비'와 함께 세워져 있는 이 비는 1987년 1월 전라남도로부터 문화재 자료 제 14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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