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문학발전을 위한 길



어린 시절 가슴 설레게 했던 설날도 지나갔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축복이 가득한 한해가 되시기를 빌면서 8만 영광군민들께 늦게나마 새해 인사를 올린다. 32년만의 폭설도 촉촉한 봄비에 녹고 있다. 산수유 노란 꽃망울 터뜨리는 3월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영광민족문학작가회의(영광문인협회)에 베풀어주신 따뜻한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영광문화와 영광문학을 위하여 나름대로 참여하고 애썼던 나는 새 천년 새 세기가 열려온 시간에 망설임 끝에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영광군정 책임자에게 고언(苦言)을 드리고 싶다.

지난 해 영광문인협회의 창립과 문학강연, 나아가 영광문인협회가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영광지부'의 이름으로 새 옷을 입고 문학강연, 시낭송회, 역사문화기행 등 일련의 문학행사들을 주최하고, 조운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얻은 결론은 영광군정 책임자의 문화마인드는 문화발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다는 사실이다.

군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자의적인 생각에 좌우될 일이 아니고, 군민과 지역문화 발전을 위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소중한 시간과 돈과 생명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펼치는 문화예술 행사는 마땅히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해 주어야 할 정치적, 행정적, 법적, 도의적 책무가 있다고 본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너희들끼리 하라고 방기한다던지, 사단법인이 아니면 도와 줄 수 없다느니, 문학단체가 하나여야지 둘이니까 안 된다는 식의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영광의 문화예술이 발전되겠는가. 전부 의지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고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보조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국문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통합해야만이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아무데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명한 문화훼방꾼의 행태로서 당장 끌어내려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문화판은 명령 하나로 움직이는 군대도, 상명하복의 행정조직도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영광군정 책임자는 이제까지 위와 같은 뒤떨어진 문화의식과 안일한 행태를 보여 주었고, 자신과 군민을 위해서 이 점은 한시바삐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영광의 문인들에게 한 마디 하고자 한다. 필자는 영광신문(2000.1.17)에 발표한 '왜 영광군 문인협회를 창립하는가' 라는 글에서 문향(文鄕)으로 빛나는 옥당고을 영광문학을 명실공히 대표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문학단체를 만들어‘새 판을 짜겠다’고 다짐했다. 갖은 방해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뜻밖에 열심히 문학활동을 하는 문인들을 '감투 지향적인 문인들'로 가차없이 규정하면서 자기는 세상에 초연한 신선행세를 하는 교만한 사람이 나타났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여 보자. 학교에서는 공부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학급에 반장도, 학년(학과)과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회장도 필요하다. 문학에서 작품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문학 동아리에도, 크고 작은 지역단위 문학단체에도, 전국적인 문학단체에도 대표자와 임원이 필요하다. 문학단체와 임원의 필요성은 생략하겠다.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에서도 작품 잘 쓰고 조직활동을 잘 하면 이상적이다. 한 가지만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는 상대방을 욕할 수는 더욱 없다.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해도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 되고, 열정이 있어야 하며,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야 하며,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욕먹을 각오도 해야한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지역문단도 그렇지만, 지난 1월 14일 실시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단 및 분과위원장 선거도 일부 과잉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5,500여명의 회원을 둔 국내최대 문인단체의 명예와 문인들의 양식에 손색이 없는 공정하고 질서있는 선거축제였다. '우리 문단의 중신들이 감투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것...' 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보는 시각이 놀랍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문단과 문인들 전체를 비하시키므로써 스스로를 모욕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문인들, 특히 문단활동을 하겠다고 나선 문인들은 모두 양식도 상식도 없고 오직 감투지향적인 모자란 사람들로 보는 오만하고 자기 도취적인 함정에 빠져있음을 스스로 공포한 셈이다. 앞으로는 제발 더 이상 이러한 좁은 편견과 시기심, 상대방에 대한 생트집을 잡기 위해서 머리 싸매며 귀한 에너지를 허비할 것이 아니고, 작품수준의 향상과 영광문학의 내실 있는 발전을 위하여 눈을 돌리고 궁리할 것을 정중히 권고한다. 영광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누구나 머리 끄덕일 수 있는 '상식과 룰을 지키며 선의의 경쟁'을 해야할 것이다. 문화예술 단체가 둘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해서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도, 대립적 모순개념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위험한 편협과 독선일 뿐이다. 자율성과 다양성 속에서 선의의 경쟁과 공존과 상생과 창조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은 문학과 문단에도 지극히 필요하고 타당하다.

어느 분야에서나 개혁에는 개혁저항이 있다. 혁명에도 반혁명이 있고,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물리학 법칙을 안타깝게도 문화예술의 현실에서 수차례 온몸으로 쓰라리게 배웠다. 문화의 세계에서도 개혁과 진보에는 반개혁과 보수반동이라는 역풍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땀방울 없는 열매가 어디 있으며 고통 없는 전진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대마면 월산부락) 고샅길 미나리꽝에서 엄동설한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푸르게 푸르게 자라고 있는 파아란 미나리들을 보고 생명력의 신비와 외경을 느낀 적이 있다. 우리 영광문학에서도 압박과 꽃샘 추위가 있지만, 문학적 재능과 역량이 넘치는 문학 청소년들과 문학청년들(영광사랑청년회 회원들)이 얼음장 밑의 미나리처럼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새 천년을 여는 지난 해에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훼방을 비상한 돌파력으로 뚫고 나가 '영광문학의 틀을 다시 짰다'고 자부한다. 2000년 2월 19일, 본회 창립총회 때 선언했듯이, 앞으로 어떠한 핍박과 고난도 결연히 박차 헤치고 영광문화의 한복판에 문예부흥과 가치창조의 푸른 깃발을 영원히 세차게 휘날릴 것이다. 존경하는 군민들과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이해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김 윤 호

시인, 영광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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