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복목사(사랑의교회)





 사람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그 사람의 진심에서 나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순간의 감정에서 나오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남기는 말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광에서 무려 이백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 저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한 마디의 말만 했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목숨을 잃어갔다. 기독교사에 있어서 두드러진 점은 수많은 핍박과 고통을 가할 때 기독교인 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갔다는 것이다. 이 천년 전 로마시대 때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해야했기에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다.(당시는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사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불과 이백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기독교는 전 로마를 기독교화 했다. 그것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이다.


 


  그러한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여인들의 경우에는 남편에게 죽도록 맞고, 시어머니가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모진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는 채 백년이 지나지 않아 무려 천만 명에 도달했다. 가까이 있는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종교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옥에 가두고 리더 격인 사람들은 전기 봉으로 지지고 때리고, 몽둥이로 다리를 후려쳐서 다리뼈를 부스러뜨리는 등의 고문을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독교인구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도 꼭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다. 고문을 가하는 사람마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포기하고 석방하기도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영광신문 독자 여러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잃는 고통을 당해도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부인하지 않을까요? 그들에게는 예수는 생명보다 귀한 분이요, 그분 안에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던 그 예수를 여러분도 확인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정말로 미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수억의 사람들이 전부 미친 사람이란 말입니까? 저들이 부르짖던 예수가 정말로 그렇게 좋은 분인지 한번은 확인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저들의 말대로 예수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결정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예수에 대해서 알아보십시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