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복목사/사랑의교회




  영광은 원불교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불교의 태초 도래지라고 하여 불교세가 강하다. 요즘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것을 가르치는 이단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니다. 소위 정통 기독교라고 부리는 우리 기독교인들이다. 많은 주님의 양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쓰러져가고 있다.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필자나 필자의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들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으나,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영광도 예외는 아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맡길 때 물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이 말은 모든 주의 백성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지만, 특히 목회자들이 대답할 말이다. 만약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네가 진실로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극히 송구스런 마음으로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실제로 내 모습은 너무나 엉망이기 때문이다. 내 속에 주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주님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기면서도, 불구덩이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하며 울부짖을 사람은 불쌍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맡겨진 양 무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충성을 다해 말씀으로 이들을 먹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메마른 심령으로 살아가는 기독인들을 볼 때 가슴이 아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잘하고 있니?”라고 물으면 솔직히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 또 그런 심령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기도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들어갈 때 동전 두 렙돈을 넣었던 것을 보게 된다. 렙돈은 오늘날로 말하면 700원에서 800원정도이다. 그러니 과부가 돈 1500원 내지 2000원을 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과부가 가장 많은 것을 냈던 것이다. 나는 당시의 과부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과부는 남들처럼 자기도 주님을 위해서 헌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하루를 먹고 살기도 너무 힘들었다. 남은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눈물로 기도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도 주님을 위해서 헌금할 수 있게 해주세요.” “누구보다도 많이 헌금하고 싶어요.”라고 주님께 매어 달렸다. 그때 그의 마음에 한 가지 감동이 일었다. “너의 생명을 바쳐라.”라고. 그 말씀은 곧 그가 먹을 양식을 위해 살 돈을 주님께 바치라는 말로서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가진 전부를 헌금했다. 주님은 그 마음을 받아주셨다. 그래서 “너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칭찬하셨다.


 


  영광신문 독자 여러분! 영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지요, 선교지요, 사랑할 곳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두 렙돈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어도 영광을 사랑하고 울며 기도하고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릴 때, 영광은 변화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주님이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