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복목사/ 사랑의교회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게 던져지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이지만, 돈 때문에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또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내 인생을 걸만한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바울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가졌던 학벌을 버렸다. 자긍심을 버렸다. 외적으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 말은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서, 결코 같이 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여겼다. 왜?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도 세상에서 백 가지 분야의 박사가 되는 것보다 예수라는 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이 더 좋다.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예수를 아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 그 어떤 것을 아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귀하다. 그것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물질의 세계처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가장 낙담할 상황, 가장 힘든 상황에서 일어난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무기를 든 이집트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사형을 앞둔 감옥에서, 그리고 몽둥이로 맞아서 온 몸이 피멍이 들어서도 믿음으로 찬송할 때 기적은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했다. 왜냐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항상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고난이다. 여자는 첫 아이를 낳아야 어머니의 수고와 사랑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고통을 통해서 고통을 통하여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수고와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참으신 고통이 얼마나 크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무감각해서 내가 고통을 당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고난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고난과 사랑을 알기 위하여 고난을 추구해야 한다. 고난이 목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자. 고난 없이 예수의 사랑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상급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누구나 아는 가장 확실한 진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난다. 돈을 위해서 사는 자는 돈을 벌 것이다. 영원을 위해서 사는 자는 영원한 것을 거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에서 주실 상급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분이 주실 가장 작은 것이라도 이 세상의 가장 큰 것보다 귀하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결코 세상의 것에 인생을 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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