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호 태풍 '매미'

제14호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순간최대풍속 60m를 기록하며 1904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였던 '프라피룬'(2000년 8월, 순간풍속 58.3m)의 기록마저 갈아치웠다는 태풍 '매미'는, 남해에 435㎜를 쏟아 붓는 집중호우까지 동반하면서, 130여명의 사망·실종자와 150만여 가구의 정전사태, 4만5천여㏊에 이르는 농경지 침수 등 1조5천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피해를 남긴 체 물러갔다.

1959년, 한반도를 강타하여 온 국토를 처참하게 짓이겨 놓았던 '사라호'를 능가하는 위력을 앞세워, 1000톤에 달하는 부산항의 대형 컨테이너 크레인을 줄줄이 휴지조각처럼 구겨 놓았으며 철도 및 도로의 유실과 함께 수천 척에 달하는 어선, 어장의 파손 등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며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한다.

특히 지난 해, 영동지방을 관통하면서 산사태와 하천의 범람 등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왔던 태풍 '루사'의 피해복구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시 불어닥친 '매미'는 늦가을 대지를 뒤흔드는 요란한 울음소리만큼이나 수재민들의 생체기를 짓누르는 큰 아우성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다.

역대의 태풍기록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태풍은 약 300여개였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최근의 태풍피해는, 지난해 강원, 충청지역을 관통하면서 하루 최고 1천㎜에 가까운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250여명의 인명피해와 9만여 명의 이재민을 낸 태풍 '루사'(2002년 8월30일~9월1일)였다.

'루사(rusa)'는 5조4천696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를 입히면서 역대 태풍 중 가장 큰 재산피해를 준 태풍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인명피해에 있어서는 지난 1959년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불었던 '사라호'로 850명이 최대기록으로 남아있다.

'사라호' 때문에 남편을 잃은 아내의 이야기를 노래한 대중가요가 있었을 만큼 당시의 상황은 처참했었다고 한다.

강수량에서는 일일 1천mm를 기록한 '루사'가 '사라'를 앞지르고 있지만, 넘기 힘든 보릿고개가 있었을 만큼 경제사정이 열악했던 50년대 말의 암담한 상황에서 태풍 '사라'에 대한 대비는 물론 복구마저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처참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편, 기상관측에 대한 기록이 없는 오래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큰 인명피해를 냈던 태풍은, 1936년 8월, 태풍의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우리나라를 지나갔던 태풍이라고 한다.

그해 8월 26일에서 28일까지 남한의 전지역을 휩쓴 이 태풍은 무려 1,232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부상자도 1,646명이나 됐는데 이 때 강릉지방에는 358.3mm의 강우량이 기록되기도 했다고 한다.

1923년 8월 11일에서 14일까지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도 1,157명의 인명피해를 냈다고 하는데,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972년 8월 18일에서 20일까지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태풍 '베티'가 55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최대의 인명피해로 알려져 있다.

늦여름 태풍들은 재산피해 면에서도 기록적이다.

지난해의 '루사'가 기록한 5조5천억원에 이어 1999년에 불어닥쳐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산피해를 낸 태풍 '올가', 6천억원 가량의 피해를 남긴 87년의 '셀마'가 있었으며 95년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우리 나라에 영향을 주었던 태풍 '재니스'는 5,484억원의 아까운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이밖에도 91년 8월에 불었던 태풍 '글래디스'는 3,138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주었으며, 98년 9월말의 태풍 '야니'와 2000년 8월말의 태풍 '프라피룬', 84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전국을 강타한 태풍 '준' 등도 모두 2,5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남기기도 했다.

하필이면 매미가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3년, 호주의 기상예보관들이라고 한다.

당시의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태풍에 붙여 놀림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공군과 해군에서였는데, 이때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으며, 이러한 전통에 따라 1978년까지는 태풍에 붙여지는 이름이 모두 여성이었다.

이 후 북서태평양에서의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괌에 위치한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했으나 2000년부터는 아시아 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태풍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태풍 이름을 서양식에서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해 오고 있다.

태풍 이름은 각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이름의 총 140개로 구성되어 사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개미, 나리, 장미, 수달,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나비’등의 태풍 이름이 등록되어 있으며, 북한에서도‘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매미, 메아리, 소나무, 버들, 봉선화, 민들레, 날개’등 10개의 이름이 등록이 되어있어 당연히 한글 이름을 가진 태풍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명명한 태풍 '매미'가 남쪽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북핵문제와 연관되어 묘한 여운이 남기도 한다.

영광의 태풍기록

태풍은 광범위하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특별하게 우리지역 영광에만 국한된 기록은 없으나 영광향토문화연구회에서 편찬한 영광역사연표에 의하면 조선조에 있었던 몇 건의 강풍기록이 남아있다.

1426년 7월 16일(세종 8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영광에 큰바람이 불어서 벼가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 채 뽑힌 것이 많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1829년 8월15일(순조 39년)에는 "초8일과 9일에 내렸던 비와 함께 바람이 세차게 불어 벼는 이삭이 피고 목면은 개화된 시기인지라 바람에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각사등록)이 있으며, 1931년 4. 6.에는 해일로 영광군 안마도 근해의 어선 60척이 파괴되고 60명이 사망하였으며 250명이 실종된 대형사건의 기록도 보인다.(광주전남 100년연표)

그러나 사상 최대의 강풍을 동반했던 태풍 매미는 다행히 한반도 서부지역을 비켜가면서 우리 영광지역에는 거의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뜻한 온정이 필요할 때

태풍의 에너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0만 배에 달하는 위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거의 모두 에너지는 자신의 바람순환을 위해 소비를 하게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에너지는 단 10%뿐이라고 한다.

10분의 1에 불과한 에너지만으로도 이처럼 처참한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 앞에서 새삼 나약하기만 한 인간들의 허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이번 태풍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수재민들의 빠른 복구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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