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바다를 노래한 시편들

-그 영원한 시원(始原)의 울림-

강구현/ 영광신문 편집위원

 당신, 지나간 시간들, 따뜻했으나 쓰라린 숨결들, 그렇다고 울지 마세요. 새로운 시간들은 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법이니까요. 당신, 내 앞에, 내 뒤에 무수히 서있는 허물 많고 그리움 참 많은 당신, 힘내세요. 저기 새로운 시간들의 파도소리가 들리고 있잖아요. 익숙한 듯 낯설고... 낡은 간판처럼 빛바랜 삶, 그 눈물겨운 풍경들...  엄청난 포즈와 현학(玄學)의 시대, 겉이 속을 압도하는 세상, 교언(巧言)이 진심을 호도하는 세상, 과시가 겸손을 밀어내는 세상, 욕망이 절제를 비웃는 세상, 참으로 번쩍거리는 것과 소란스러운 것 그리고 위태로운 것이 넘치는 세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변화의 폭이 크고 난폭한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어느새 길을 잃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꼴이 되기 싫은 당신이여! 우울을 못견디거나 우울을 무기로 삼는 이 시대 상처받은 영혼들이여!  잠 못 드는 당신의 밤은 늘 깊고도 눅눅하지만 그렇다고 울지 마세요. 오늘 하루 저 바다로 나가 봐요. 몽환(夢幻)의 바다, 생명의 바다, 그리움의 바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의 저 칠산바다.


 



두우리 연가(戀歌)-천승세


저 숨소리 들은 적 있다, 선사(先史)의 온갖 묵상들이 서열대로 외출하는 칠 산 밤바다.


그래, 줄무늬 토기 속에 긴 잠자던/빗살무늬 토기 속에 웅크렸던/그래, 그 좁디좁은 열모의   문을 열고 하다못해 지금 막 부화 한 배도라치 치어들까지 일제히 일렬로 서서 뒤흔드는    파문(破門)의 합창(合唱).//저 불 빛 본 적 있다, 저마다 살점 한 점씩 뜯어들고 정갈한 소   망에다 불을 붙이는 은린(銀鱗)들의 쿨렁이는 소요./그래, 오늘사 안다, 드디어 정점(頂点)   에서 쓰러지는, 탄주의 피 흐르는 손가락 끝까지 선사(先史)의 무량겁 침묵이 얹히는 것을.


당신, 오늘 하루 고단한 삶에 지쳐 쓰러진 자여! 모든 것이 자신을 치장하느라 번쩍거리는 세상에서, 자신을 번쩍거리도록 치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서, 모조품이 진짜보다 더 번쩍거리며 거리를 가득 메우는 세상에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몸부림치는 당신,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 바다의 품에 안겨 편히 쉬세요.


 


내 너에게 소망 하노니-윤설아


뭍에서 나오라/상심의 세월아, 상처 받은 영혼이여!/저 밑바닥을 향해 절벽을 걷고 어둠을   지나/나에게 오라./내 품은 깃털처럼 한없이 부드럽고/깊고도 넓은 조약돌 많은 곳./몸을    검게 태우던 저 태양으로부터/온전히 해방되어/내 품 속에서 먹고 걸음마 하라./완벽한 둥   지를 틀어/네 생에 최고의 순간을 맞으라./거대한 몸집 미지의 곳으로 이끌어/소용돌이가    되어라./달팽이가 되어라.


당신, 지상의 모든 동물 중에 인간만이 이중성을 지닌다는 사실 앞에 힘들어하며 그 이중성 때문에 인간이기도 한 당신, 그 이중성이 없으면 고뇌도 없을 당신, 그래서 그 이중성은 가치가 있고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신, 그 속에 고뇌와 갈등과 내면의 추구가 존재하기에 항상 저 칠산바다가 그리운 당신. 오늘 하루 저 그리움의 소리를 들어요. 절망과 그리움 속에서 기다림으로 거듭나는 새 희망의 소리를 들어요.


 


    썰물-임숙희


물때가 지난 것일까?/후딱 비워버린 술잔처럼/그렇게 후련하게 등 돌리며/아득하게 멀어진   그대 하얀 손수건/오지랖 넓은 여인으로 태어나/약속으로 바라보다 망부석이 된 갯벌,/미동   도 없이 실신한 목선 두 척,/ 빨간 신호등에 멈춰선 한 점 바람,/정적을 가위질하는 바닷새   /지금은 서해안 음력 스무 닷새 그리고 한 낮./수묵 빛 바위에 일상에 지친 어깨를 눕힌    다./쪽빛 하늘 둔덕엔 열 두발 상모 휘돌아 치며 흐르고/수궁 저 발치에선 징 소리 윙윙    흩어지며/망각 속에 잠든 수초들의 주문을 풀기시작 하는데 ..../ 간 밤 머리맡에 와/부질없   이눈물나는 사연 주절대다/가슴에 안겨 울고 간 파도는 차라리 잊자./억 년 세월/기억상실   증에 걸린 저 침묵의 바다처럼.


당신, 절망하는 자여! 혼자서 가는 길이 외롭고 힘든 자여! 이제 함께 걸어요. 포기하지 않는 당신에게만 길이 열릴테니까요. 그리고 인생은 주어진 길을 가는 숙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스스로 숙명이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용기를 가져요. 혼자가 아닌 그 누군가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예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사랑하다 죽어버리세요. 삶을! 인생을! 영혼을!


 


    두우리 연가(戀歌)-강구현


마파람 끝자락이 늦바람으로 돌아치면/잠을 자던 숭어 떼가 수평선을 뒤흔들고,/ 막혀있던   갯벌이 숨 눈을 뜨니/너와 나/맛 쇠 먹음 멀큼해진 사랑으로 달려가자/ 저 백 바위 가슴에   서 부서지자.//서쪽 먼 하늘 끝 철새가 휘돌고 간 자리/검붉은 저녁 놀 가슴 저밀 때/너와   나/갯바람 타고 흐르는 칠 산 바다 혼 불이 되었다가/ 석삼년 가뭄 끝에 울음 우는/천둥이   되자 바람이 되자 파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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