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전 전남문인협회장

 

 


 보고 싶은 어머님!


 어머님이 가신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흘러간 20년 속에서 순간순간 어머님이 떠올라 잠 못 이루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도 아들, 아들 하시던 기다림 속에서 태어난 손자도 훌쩍 자라 스물아홉이 되었답니다. 이따금 할머니가 계시는 친구 집이라도 갔다 오는 날이면 저도 할머니가 그리워지는가 봐요.


 


 그렇겠지요. 그놈한테 쏟은 어머님의 사랑은 세상이 다 아니까요. 딸만 다섯을 낳고 여섯 번째로 태어난 놈이 어머님의 아들 제가 아닙니까. 그래서 결혼을 빨리 재촉하셨고 아들 손자 보기만을 확수고대 하셨는데 딸만 둘을 낳으니 불안하시기도 했겠죠.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의 심정은 헤아리시지 않고 아들만을 기다리던 어머님의 마음만을 풀어 그때 며느리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큰 어머님의 손자 앞에서 그때의 이야기로 할머니의 옛정을 꽃피운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님!


 


 어제는 아내랑 같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태어날 당시 딸이어서 서운하셨다던 두 손녀가 벌써 아이들을 낳아서 잘 기르고 있답니다. 20여 년 전 할머니의 서운함의 영향이었는지 두 손녀 모두 아들을 낳았답니다. 갈 때는 저도 살아생전 어머니의 모습으로 되어갔답니다. 텃밭의 상치며 도라지 풋고추 등 가지고가야 별로 달갑게 맞이할 애들도 아닌 줄 알면서 보따리를 세 개나 만들어 갔으니 짐작이 가실 거예요. 보따리 세 개를 들고 나가면서 아내와 주고받는 말들은 생전의 어머님이 텃밭의 좋은 것은 모두 딸들에게 가져다주던 그때. 아내가 중얼거렸던 푸념이 살아났답니다. 내가 일부러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꾸 했었지요. 아내가 세월 가니 어머님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봐요.


 


보고 싶은 어머님!


 


 읍내에서 완행버스에 오르자 꼭 옛날의 어머님과 같은 모습을 한 팔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올라오셨어요. 겨우겨우 짐 보따리를 들이밀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행히도 공익요원인 듯 한 젊은 청년이 일어서서 거들어줬습니다.


 


앞자리에 앉지도 앉고 중간쯤 좌석으로 들어가셔서 앉았습니다. 조금 앉았다 일어서시더니 짐은 놔둔 채 버스운전석 가까이로 가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운전수양반 이 차 목포 가지라우”하셨습니다. 차의 행선지가 확인되지 않아 불안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옆 사람한테 물었어도 되는 일인데 할머니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지요. 대답이 없는 것으로 봐서 행선지가 아닌가보구나 생각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좌석으로 다시 오시더니 보따리를 챙겨 내려가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물었던 말에 대답도 없던 기사에게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기사양반 이 차 목포가지라우?”


그 제서야 기사양반은 할머니께 퉁명스럽게


“앞에나 읽어보고 타시오”였습니다.


 


그러자마자 할머니는 바로 육두문자를 섞어 큰소리로


“야! ××놈아 내가 글을 알면 너한테 물어봐”하시면서 내려가셨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님!


 


  할머니가 내려가신 뒤의 버스 안은 더욱 더 썰렁했답니다. 예서제서 사람들이 광주 간다고 했습니다만 할머니는 굳이 버스기사 양반만을 불러서 물으려했을까요?


 


버스를 몰고 가는 기사양반이 제일로 확실한 믿음이 있었을 것 같아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가다가도 내려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기사는 끝까지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요. 내려가신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할머니 글을 알았다면 묻지도 않았을 테고 이런 상활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보고 싶은 어머님!


 


  저에게는 그 할머니가 그냥 지나치는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까막눈으로 살으셨던 어머님이 떠올라 얼마나 가슴 아픈 삶을 살으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도 몰래 눈물이 솟더군요. 아내랑 둘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수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기사양반도 원망해보고 때로는 할머니도 원망해보고 서로가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고 친절했으면 좋았을텐데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론 기사양반이 더 원망스러운 것은 할머니께서 던진 한마디 “야 ××놈아 내가 글씨 알면 너한테 물어봐”였습니다.


 


어머님. 정말 서럽도록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 덕으로 학교를 다니게 된 저희들은 이런 일을 이제야 깨닫게 되어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늘나라 그곳에선 글자 모르셔서 당하시는 서러움은 없으시겠죠. 그래야죠.


 


 어머님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어머님의 살아생전시의 아픔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겠군요. 너무 길어서 이만 줄일게요. 옆 사람한테 읽어주시라고해서 들으시던지 같이 동봉한 녹음 테이프를 들으셔도 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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