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너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서울을 사수할 테니 안심하라고 한 한국전쟁 당시의 정부와 다르지 않다. 국민의 ‘안보’와 ‘식량’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서부 러시아를 정복, ‘킵차크 한국’을 일으켰다. 14세기 중기 ‘킵차크’의 군대가 유럽과 전쟁을 벌이면서 페스트에 걸려 부패한 시체를 던졌다. 이로인해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 했다. 주로 쥐에 의해 급속히 번지는 페스트로 인해 유럽 인구는 5분의1로 줄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100여년간 계속된 ‘100년전쟁’도 페스트로 인해 중단됐다. 인구 감소로 인해 장원과 봉건제가 흔들리고 죽음을 피하기위해 미신에 의존하는 풍조가 퍼졌다.


 ‘알베르 까뮈’는 유럽 대륙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 넣은 페스트를 제목으로 장편 소설을 출간 했다. 폐쇄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죽음 앞에서의 공동운명체라는 주제를 강조, 연대의식과 참여의 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2차세계대전 직후 최대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처럼 죽음을 연상시키는 페스트는 아직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오지에 잔존하고 있어 기근등 재앙이 닥치면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페스트처럼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신종 플루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확산 속도가 무섭게 빨라 지구촌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의 경우 초중고교 학생 1만여명을 돌파해 무섭게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휴교 조치한 학교도 급증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그 확산세가 본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교과부가 학교 현장 점검에 나서고 범정부 대책본부 가동을 검토중이라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우리 정부는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지나치게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 1차유행의 중간단계로써 ‘경계’의 단계이지 ‘심각’의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안해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전국의 모든 병원에 신종플루 환자가 넘쳐나야 ‘심각’ 한 단계이니 주의하라고 할 것인가.


 기온이 점차 떨어지면서 신종플루는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서울을 사수할테니 안심하라”고 한 한국전쟁 당시의 정부 발표와 흡사한 느낌이다. 당국의 말을 믿고 국민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신종플루 감염 환자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있는데도 안심하라고만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보다 전염을 막지 못한데 대한 질책을 우려한 ‘공무원식’ 사고방식은 아닌지 크게 걱정된다.


 위정자는 국민의 안보와 식량을 책임져야 한다. 즉,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쟁과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굶지 않도록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신종플루 환자가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 때문이다. 위정자로서의 자질을 의할 수 밖에 없다.


 손을 자주 씻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되도록 가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 언제인가. 어지간한 업소에는 손 살균기가 설치되고 도로가에 손 씻을 수 있는 수도까지 설치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의 어느 학교에서도 손 살균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실정이니 각급학교 학생들의 감염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조심하라고 했으니 학생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무책임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는 국민의, 자치단체는 지역민의,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안보’와 ‘식량’ 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가 소홀하면 자치단체와 지역의 교육청 차원의 충분한 조치라도 있어야 한다. 내년 6월이면 지방선거다. 대유행 조짐을 보이는 신종플루에 자치단체나 교육청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대처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지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는 관심 없고 개인적 ‘성공’ 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비 위정자’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