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병과 외로움의 고통속에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살아가게 놔두다니…. 공옥진은 사라져가는 1인창무극을 재현 했다. 당연히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 계승해야 한다”


 


 하루가 한달이나 된듯 11월이 되자 첫날부터 날씨가 심하게 변덕을 부린다. 일기예보도 약간의 비와 함께 한파가 온다더니 딱 들어 맞는다. 좀 틀렸으면 하는 예보는 왜이리 딱 들어 맞는지…. 몸이 절로 움츠러 들어 TV 채널을 뒤적이고 있는데 입이 비틀어져 말도 잘 못하는 할머니가 나온다. 다시 리모컨의 채널을 바삐 움직이다 언뜻 아까 스쳐간 할머니가 왠지 아는 얼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되돌렸다.


 


 아니나다를까 ‘공옥진 여사’다. 내 어렸을 적 이웃에 살았던 ‘예인’ 공옥진이 늙고 병든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공옥진의 예술은 많은 민중들을 웃기고 울렸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사람 ‘공옥진’ 만이 할 수 있는 ‘1인 창무극’은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데도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한채 늙고 병들어 사위어 가는 안타까움을 다룬 KBS 1TV‘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복만 입고 다니던 작은 아주머니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는 예술인으로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었다. ‘병신춤’ 공연으로 공연예술계의 화제가 됐다. 공연 할 때마다 만원을 이루고 화제가 됐으며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다. 그 작은 체구 어디에 그런 엄청난 에너지가 있어 1시간여를 무대에서 혼자 춤추고 창하며 관중들을 사로잡는지 놀라웠다. 춤도 보통춤이 아니고 흉내조차 어려운 병신춤을 췄고 체구가 큰 명창들에 못지 않은 ‘소리’에, ‘철학’이 담긴 재담까지 곁들여 관중들을 웃기고 울렸다.


 


 익살과 청승,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장애인의 애환을 온몸으로 풀어내는 ‘민중예인’ 공옥진의 예술은 민중적 세계관과 특유의 흉내 솜씨가 빚은 것이라는 평과 함께 대중과 대학가의 각광을 받았다. 곱사춤· 문둥이춤· 앉은뱅이춤등 무려 57가지의 병신춤을 판소리 창과 함께 풀어내는 공연으로 ‘스타’가 된 공옥진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스타’ 공옥진은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영광의 ‘시골 아낙’으로 돌아갔다.


 


 상가에서 상여를 놀리며 ‘소리’를 부탁하면 한이 서린 목소리를 구성지게 풀어내는 공옥진에게서 전국적으로 명성과 인기가 높은 ‘스타’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죽음을 애도하는 ‘시골 아낙’의 모습만 보였다. 공연으로 상당한 돈도 만졌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옷이건 돈이건 있는대로 줘버렸다. 그런 공옥진과 어려서부터 잘 알고, 나를 보면 아는 채를 해주는 사이라는 것에 나 스스로 우쭐해지기도 했다.


 


 ‘예인’ 공옥진은 남도지방문화재이던 공대일의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나 일본에서 천대를 받으며 최승희로부터 춤을 배웠고, 다리밑에서 걸식을 하기도 했다. 영광 불갑사에서 ‘수진’이란 법명으로 승려 생활도 했다. 임방울 창극단과 조선 창극단등 국악단체에서 비극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으나 60년대 이후 영광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73년 남도문화제를 계기로 ‘1인 창무극’을 만들었고 70년대 후반부터 ‘스타덤’에 올랐으나 2006년 교통사고와 ‘3차 신경통’이란 병으로 무대를 내려와 영광의 집에서 병과 외로움의 고통속에 살고 있단다.


 


 “사람들은 내가 문화재인줄 알아. 문자만 들어도 가슴이 무너져” 입이 비틀리고 손을 떠는 공옥진의 말을 들으며 부끄럽고 미안했다. 세상에 공옥진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니…. 언론 종사자로서 미안했고 같은 영광사람으로서도 부끄러웠다. 영광군이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으나 전남도 문화재 심사위원들이 부결 시켰단다. 아는 사람만 아는 무형 문화재들이 수두룩 한데 대중을 울리고 웃기기로 유명한 공옥진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니 어이가 없다.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큰 것이 무형문화재인데 공옥진의 예술이 가치가 없단 말인가. 중앙대 교수였던 정병호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우리 전통 문화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문화를 재현한 공옥진을 당연히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1인 창무극’을 보여준 역사속 실존 인물 공길과 공옥진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도 학술적 연구 가치가 있다고 본다. 공옥진이 살아 있을 때 문화재로 지정, 민중의 심금을 울리는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을 보존, 계승토록 해야할 것이다.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영광을 방문, 공옥진을 껴안은 것만 봐도 공옥진은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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