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희(羅姬)’ 2. - 갓난아이의 배움 -

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흔히들 갓난아이를 가리켜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때라고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4개월 동안 내가 보았던 ‘라희’는 많은 것을 배우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첫째, 사물의 인식(認識)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의 하늘에는 천사와 곤충모양의 모빌이 납니다. 요즘 모빌에는 소리도 나고 노래도 나와 시청각(視聽覺)적으로 아이의 눈을 붙잡아 둡니다. 목을 움직이게 되자 텔레비전도 곧잘 보더니, 몸이 더 자연스럽게 움직여지니 그것들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찾게 된 곳이 실내정원에 있는 연못입니다. 그곳의 빨간 열대어들의 움직임을 어찌나 진지하게 좋아하던지, 그 옆에 아예 나무발판을 사다 깔았습니다. 그리고 재미삼아 하는 슬픈 톤의 소리에는 입을 삐죽이고 꾸중하는 소리에는 시무룩합니다. 이런 단순한 시청각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구별해 냅니다. 자기에게 오라고 사람들이 손을 뻗으면, 고개를 돌리거나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나에게 잘 옵니다. 그것은 나의 기쁨이요, 자랑이 되었습니다. 딸이 음악활동을 재개(再開)한 어느 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 ‘라희’는 잠을 자지 않고 내 품에서도 칭얼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제 엄마를 보는 순간 활짝 웃으며 즉시 생기(生氣)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약간은 당황하였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둘째, 언어(言語)입니다. 갓난아이는 자주 웁니다. 울음은 그들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에겐가 무엇을 요구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배고플 때, 개운하지 못할 때, 아플 때, 잠이 올 때에 자기를 도와 달라 요구하는 언어입니다. 그때에는 우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언제냐 싶게 금세 빙그레 웃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주사를 맞을 때에는 병아리 눈물만큼의 눈물을 보입니다. 웃음도 언어입니다. ‘라희’는 새벽에 일어나는 패턴을 보여 그때마다 어둠 속에서 제 엄마의 등을 긁어 깨운답니다. 그때에는 내 차지가 되어 환한 곳으로 데리고 나오면, 나팔꽃처럼 활짝 웃어주는 것으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이런 갓난아이의 웃음은 보는 이의 애간장을 다 녹입니다.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옹알이로 노래도 따라하기도 하고 대꾸도 합니다. 발음을 하기 시작됩니다. ‘엄-므’ ‘앗-쁘’ ‘하-브’의 순서로 하였습니다. 따져보면 의미가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소리에 불과한대도 듣는 이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신이 납니다. 이 처음의 발음들이 엄마와 아빠란 말로 정착되었겠지요. 머잖아 아이는 발음(發音)과 의미(意味)가 정확해지고 말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셋째, 몸의 운동(運動)입니다. 태어난 후 손과 발과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던 ‘라희’가 어느 날은 몸을 뒤집었습니다. 한 팔을 빼지 못하여 힘들어하면서도 자꾸만 뒤집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팔을 빼내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더니, 목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계속하는 굉장한 인내를 보였습니다. 한번은 아주 신기한 운동을 하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몸을 뒤집고 놀더니 갑자기 머리를 땅에 대고 목의 힘으로 몸을 띄우고 다리를 끌어당겨 웅크렸습니다. 그러더니 발끝에 힘을 모아 온몸을 밀어 자벌레처럼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운동들은 600개가 넘는 근육들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노력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손가락을 제 손에 대어주면 꽉 잡고서 팔을 오므려 스스로 일어나 앉기를 잘 합니다. 위와 같은 운동들은 며칠이 못되어 새로운 운동으로 바뀌니 갓난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많은 운동들을 해갑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라희’가 꿈을 꾸나 봅니다. 간밤은 그가 첫 번째 맞이한, 천둥 번개가 으르렁 번쩍거리고 비바람이 세찬 무서운 밤이었는데도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얼굴에는 줄곧 미소가 번집니다. 입을 벌리어 온 얼굴이 활짝 웃다가 몸을 뒤척입니다. 그때 강아지 베개의 꼬리가 얼굴을 간질이자 작은 두 손이 부자연스럽게 올라와 강아지 몸통을 짓이깁니다. 갓난아이들은 세밀하고 자연스런 손동작이 되지 않은가 봅니다. 그리고 잠을 자면서도 이렇게 배운 것들을 되새김을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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