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잎은 굴러도 대지는 살아있다.”

정덕한/ 바우연구소장

 


 지난 11월 20일자 영광신문에는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두 개의 글이 게재되었다.


 


 그 하나는 4면 ‘농민의소리’에 실린 “전도된 가치,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 농업을 말하다.” 라는 주경채 영광군 농민회장의 글이고, 또 하나는 11면 ‘마음의 창’에 실린 영광신문 편집위원인 김철진 박사의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에세이 이다.


 


 주 회장의 글은 “자본이 주도하는 정글의 법칙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재화를 가격으로 매겨 시장에 내 놓아도 시장은 냉정하게 걷어차 버린다.”라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 박사의 글은 “헤엄을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힘이 빠져서 익사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지게 된다.”는 예화로 요약할 수 있다.


 


 19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에서 미국이 제안해서 통과시킨 내용의 대부분은 카길이라는 식량메이저의 전 부사장인 ‘암스튜츠’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농가에 대한 보조 삭감과 농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폐지”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곡물유통의 80%를 카길을 비롯한 4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올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책정한 농업보조금은 10조1000억원. 하지만 전체 농민의 62%를 차지하는 경지면적 1ha 미만 영세농들의 순농업소득은 평균 5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0조원이 넘는 정부 보조금이 있는데 “사는 게 힘들다”는 농민들의 하소연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무얼까.


 


 밀려드는 수입쌀에 대응해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쌀겨농법 등 친환경 고품종 재배가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 쌀의 수매가는 40kg 1포대당 6만원 가량으로 일반 쌀에 비해 1만원 이상 높다.


 


 “품질 향상과 생산량 조절차원에서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농법으로 가야 한다”면서도 “나이 드신 분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인해 팔리지 않아 사실은 고소득이 아니라 재고 누적으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농가는 말한다.


 


 최근 농업계 일각에서는 일정기간 휴경을 하거나 벼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매년 남는 쌀은 16만톤 정도인데 쌀 가공식품이 활성화되는 추세여서 2012년부터는 수급이 맞을 것”이라면서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고, “현재 288개인 보조금 사업을 2012년까지 100개 사업으로 단순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에 화학비료 보조금 폐지를 비롯해 “보호 일변도였던 보조금 체계를 경쟁력 향상 위주로 전환할 것”이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보리수매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고령 영세농들에 대한 문제는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과연 2012년 우리 농촌에는 어떠한 폭풍이 예정되고 있는 것 일까?


 


 주경채 농민회장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의 농민은 그 동안 경쟁력으로 살아온 게 아니라 국민의 어버이로, 산업사회를 떠받히는 배후기지로, 낮은 농산물 가격과 농·축산물 무한개방에 맞서며, 이 땅의 먹을거리를 지켜낸 뚝심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대다수가 복지정책 대상으로 떠밀리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농협이나 군청, 그리고 농림수산식품부. 그 어느 곳을 돌아봐도, 농사꾼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절망하지는 말자.


 


 김철진 교수의 말대로 “주어진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슈퍼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슈퍼맨을 깨우는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자기 속에 슈퍼맨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이다.


 


 경제학의 시장이론에서 보자면 일반적으로 상품은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량이 늘어나는 수요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식량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변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기픈(R. Giffen)은 아이랜드의 주식물인 감자가격이 내려가는데도 감자의 수요가 늘지 않고 계속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하고 ‘기푼의 법칙’을 세웠다.


 


 식량값에서 수요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감자를 주식으로 하던 아이랜드 사람들이 소득이 올라가면서 소득이 낮았을 때 먹던 감자대신에 먹고 싶었던 흰빵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과 인도 같은 거대인구가 가난할 때 먹고 싶었던 육식으로 조금씩 전환하면서 세계적인 사료와 육류 부족사태를 야기하고 있는 상황과 같다고 할수도 있다.


 


 국내 농업 관료들도 식량농사에 대해서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데에는 ‘기픈의 법칙’과 비슷한 견해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쌀·보리의 수요가 줄었으니 식량농사를 줄인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50년 뒤에 ‘기푼의 법칙’에서 예견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흰빵을 먹는데서 나타난 건강상의 부작용과 이에 대한 폐단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알카리 식품으로서 건강에 좋은 감자의 수요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오늘날 국내에서도 ‘패스트후드’와 지나친 육류섭취로 인한 폐단은 비만으로 나타났고, 이에 대한 반사심리로 2005년부터 웰빙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앞으로 쌀과 보리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우리나라 농사 정책은 몇 년 뒤를 내다보고 실행되고 있는 것일까? 식량농사를 시장의 경쟁논리에 맡겨야 하는 상황의 변화가 거센 물살처럼 닥쳐와 농민들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국적 거대 식량자본들은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나머지 이런 저런 허점도 함께 지니고 있다.


 


 우리 농민은 역사적으로 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민족을 지켜온 전통과 경험이 있다. 이제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땅을 지키는 새로운 존속농업(存續農業)의 지혜를 찾아야할 때가 되었다. 이 땅을 지켜온 농민들의 주름살 속에서 우리는 위기극복의 슈퍼맨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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