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이 / 영광신문 사외 논설위원

91년 전 기미년, 당시 영광사람들의 기개는 참으로 대단했었다.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지 불과 13일 후인 3월14일부터 영광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광주의 3월10일에 이어 전남과 전국의 군단위에서는 맨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아우내장터의 만세운동도 그보다 17일 후인 4월1일에야 비로소 규모있게 펼쳐졌었다. 영광은 서울에서 천리나 떨어진 변방이었지만 구한말부터 일찍이 개화가 이루어져서 비록 시골이었지만 선각자들이 꾀 많았던 듯 하다.

먼저 만세운동의 횟불을 치켜든 사람들은 영광보통학교 생도들이었다. 향교의 명륜당(당시 보통학교 자리)에서 출발한 전교생 150여 명은 시가지를 돌며 시민과 합세하여 군· 경의 저지선을 무너뜨리고 군청, 경찰서 앞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만세시위는 오후 5시 경 무장한 군· 경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주동 교사와 학생들은 모두 체포당했다. 그 이후 이루어진 신문(迅問), 재판 과정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 만세운동을 선동, 지원한 사람은 24세의 청년 조철현과 훈도 이병영, 박태엽 3인이었고 주동 학생은 정헌모, 허봉, 조술현 등이었다. 이분들은 모두 징역형을 받았다. 그리고 당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소상한 자료는 유감스럽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튿날인 3월15일에는 청년들의 주도로 또 400여 명이 참여한 제2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27일에는 제3차 만세운동을 펼치려 하였으나 26일 밤에 살포한 전단이 사전에 왜경에게 발각됨으로 해서 27일 아침 태극기가 압수되고 주모자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2,3차 만세운동 주동자들은 김은환, 정인영, 조희방, 조병현, 박병문, 박정순, 서순채, 유두엽, 김준헌 등이었고 이분들도 역시 모두 징역형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법성을 위시한 대마, 불갑, 군서, 군남, 염산, 백수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기운이 태동되었다. 특히 법성포에서는 4월 1일에 거사키로 하고 나계형 훈도, 휘문고보생 신명희, 의혈청년 유영태 등 3인의 지원을 받으며 법성보통학교 생도 박명서, 최복섭, 나질순, 송택규, 배차순 등이 주동이 되어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거사 전날밤 누군가 법성우편소에 태극기 10여 본을 던져넣은 기이한 사건이 발생함으로 해서 거사는 사전에 차단되었다. 박명서, 최복섭, 유영태 세분은 역시 징역형을 받았다.

또한 4월 10일에 일어났던 이웃 함평군 해보면의 만세운동에도 이용연 등 다수의 묘량사람들이 참여하였음이 최근 알려졌고, 군서면 남죽리에서는 박동찬이 일찍이 서울의 파고다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한 증거가 되는 독립선언서 원본이 나오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영광은 충절의 고장이었다. 임진, 정유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에도 영광사람들은 어김없이 창의(倡義)했고 구한말에는 김용구, 이대극 등이 대규모 의병을 일으켜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장렬히 산화했다. 나라에 국격(國格)이 있듯이 고을에도 향격(鄕格)이 있다면 적어도 충절면에서는 영광의 향격이 그 어느 고을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최근 몇 년 전부터 3,4월이면 광주를 오가면서 해보면(문장) 시가지에 걸린「4· 10 해보만세운동 기념행사 및 애국선열 추모제」현수막을 매년 보았다. 추모하는 뜻에서 검정색 글씨로 씌어진 현수막은 그 자체만으로도 해보면민의 긍지를 높이고 해보면의 향격(鄕格)을 높이며 굳이 해보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슴속에 애국심을 새롭게 심어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금년 3· 1일절에는 국가보훈처에서도 각 지방의 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재현한 바 있다. 우리 영광에서도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추모제, 기념조형물설치, 재현행사 등의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향토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상기시켜 주고 보전하게 하는 매체와 장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발문)

기미년 3월 영광사람들은 군단위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만세운동을 펼침으로써 전통적인 충절의 고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었다. 이제 우리는 항격(鄕格)을 높이고 후손들에게 향토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신문화를 상기시키는 매체와 장(場)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