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이(朴自以) 영광신문 사외 논설위원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벼가 익기 시작하면 먼저 영근 벼이삭을 훑어 올벼쌀을 만들었다. 이 쌀은 밥을 지어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데 쓰이기도 하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데 쓰이기도 했다. ‘올벼심리’라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올벼심리가 전국적인 세시풍속이라면 영광지역을 비롯한 서남해 연안에는 이와 유사한 개념의 ‘조기심리’ 또는 ‘조기신산’이라 불리우는 세시풍속이 있다. 곡우(穀雨) 사리에 칠산어장에서 잡히는 신산(新産) 조기를 제사상에 올리고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한 것이다. 영광지방에는 곡우 절기에 시제(時祭)를 모시는 집이 많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곡우제 또는 ‘조기신산’이라 이른다. 이 제사에는 특별히 크고 알진 조기를 풍성하게 차려 올린다.

 그 외에도 곡우 절기의 세시풍속으로는 한강 유역의 ‘공지(貢脂)’와 산간 지역의 ‘곡우물’이 있다. 전자는 새봄에 강을 거슬러 오르는 ‘공지’라는 민물 생선을 잡아 조상과 성주(집을 지키는 신령)에게 제사 지내고 나누어 먹는 풍속이며, ‘곡우물’은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받아 나누어 마시는 풍속이다. 이러한 풍속들은 모두 조기심리 처럼 시산물(時産物)을 제사에 올리고 나누어 시식(時食)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기는 석수어(石首魚)라고도 했지만 서울이나 동해쪽 사람들은 ‘전라명태’라 부르기도 했다. 이는 명태가 동해의 대표 생선이라면 전라도 바다의 대표 생선은 조기라는 말이다. 조기를 가리켜 ‘민족생선’이라 이르며 결코 제수에서 빠져서는 아니되는 생선으로 여기는 연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듯 하다. 영광굴비가 설․추석 선물로 많이 쓰이는 점도 가장 중요하고 값나가는 제수를 주고 받는다는 사려가 깃든 정중한 선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기는 예로부터 영광의 대표적인 특산물이었다.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역대 지리지와 읍지에는 한결같이 토산물 또는 진공물(進貢物)로 기록되어 있고,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세종13년~1493:성종23년)이 영광을 다녀가면서는 ‘산이 온통 꼭데기까지 말리는 석수어로 뒤덮였다.’는 요지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영광 법성포로 돈실러 가자...’는 민요도 조기잡이와 관련된 것이며, ‘칠산어화(七山漁火)’라는 싯귀(詩句)도 조기잡이 배들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룬다는 표현이다.

 조기의 회유 경로는 ‘동중국해-추자도근해-칠산바다-연평도’로 이어지는데 그 중 가장 맛이 좋은 조기는 곡우 절기에 칠산바다에서 잡힌 것이다. 칠산바다 이남에서 잡힌 조기는 아직 어려서 맛이 덜 들었고, 칠산 이북으로 올라가면서는 알이 여물고 산란 준비에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맛과 영양이 떨어진다. 칠산 조기가 맛이 좋은 이유는 알이 절반쯤 여물고 영양상태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잡혔기 때문이다.

 요즈음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때문에 영광굴비의 명성은 ‘해묵힌 천일염을 사용한 섶간’과 ‘해풍에 건조한다’는 가공 노하우에 의지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옛날처럼 잡힌 시기와 지역까지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조기 인공부화와 치어양식 시험이 성공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니,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크기의 치어를 특정 해역에서 방류하여 칠산바다에 이르렀을 때 어획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면서 관련 연구와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2년 전 법성포에서는 법성단오제의 유래를 탐구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바 있다. 학술대회에서는 강릉단오제가 무속신앙에서 유래된 것을 모델로 삼아 법성포단오제도 무속신앙과 관련있는지를 집중탐구했다. 그러나 그 때 필자는 법성단오제의 유래가 혹 ‘조기심리’ 또는 ‘조운(漕運)의 무사완료’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설령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단오제에 ‘조기심리’와 ‘조운 재현’ 이벤트를 추가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법성단오제가 무속신앙에서 유래되었다는 명쾌한 결론도 도출되지 않았지만 단오제, 조기심리, 조운이 모두 어차피 영광 법성포지역의 독특한 전래문화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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