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래 /영광군교직회장

 세계 60억 인류 문명을 선도해온 민족은 유대인이고 본다. 0.3%의 작은 인구수로 역대 노벨상의 30%를 수상했고 미국 재계의 상위 40%를 차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뉴턴, 록펠러, 스필버그를 비롯한 수많은 정·재계의 실력자를 키워온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독서와 스승 존중 사상 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안에는 개발되지 않은 많은 위대한 씨앗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큰일을 성취할 수 있는지 모른다. 마리안느 월리엄슨은 ‘인간이 가진 깊은 두려움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큰 힘을 가진데 있다’ 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잘 교육 받은 훌륭한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서 미국 하바드 대학 교수 로자베스 모스캔터는 21세기의 성공 전략 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 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 정보화시대 성공의 법칙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라고 했다. 같은 시기 영국총리 토니 블레어는 총리가 되면서 처음 한 말이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 이라고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의 중요성과 관심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외교, 체육 등에서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당당한 G20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높여주고 연구력의 기초를 닦아준 학교 교육의 결과라고 본다.

 역대 위인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의 소녀 헬렌켈러에게는 눈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주고 입이 되어준 설리반 선생이 있었기에 헬렌켈러는 기적의 인물 역사적인 위인으로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도 군사부 일체 라는 말로 스승과 부모를 같은 격으로 모시는 전통이 있다. 심지어 제자는 그 스승의 그림자조차 감히 밟지 못하는 것이 우리 동양의 미덕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서는 ‘아버지와 선생님이 한 배를 타고 가다 물에 빠지면 아들은 선생님부터 구해야 한다’ 고 가르치고 있다. 그 사람들도 아버지가 귀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유대인은 선생님을 더 귀하게 생각하였다. 이것이 유대인의 가르침이요 그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질서라고 여겨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는 스승이 제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교직은 비리의 온상이 되었으며 선생님들은 촌지나 받는 부패한 죄인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더욱이 교육감과 교육의원의 선거를 앞두고 교육은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오히려 정치의 부산물로 전락하였으며 유래 없는 저인망식 수사결과의 발표는 교육의 본질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중국의 자치통감에서는 ‘경학의 스승은 만나기 쉬우나 사람의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 널리 존경받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훌륭한 선생님이 적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선생님이 좋으니까 훌륭하니까 존경한다가 아니다. 스승이니까 존경해야한다. 선생님도 때론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보통 사람이다. 그렇다고 훌륭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아니다 라고 할 수는 없다. 선생님이란 것 자체만으로 그 권위가 존중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교육이 바로 선다. 부모라고 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는 부모이며 또 부모이기에 공경해야 하는 것과 같다.

 오늘도 교단 현장에서 꿈과 희망을 전도하는 선생님들은 자긍심으로 살고 수업으로 말한다. 당신의 불타는 정열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아도, 오히려 쌓은 탑이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진다 하더라도, 제자들에게 깊은 사랑과 신뢰를 주며 잠재력을 키우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다.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도 쉼 없이 제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고 꿈과 희망을 키우는 스승님! 한 개인의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교단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시는 스승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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