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읍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요로웠던 지역으로 해양과 내륙의 문화가 공존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현시킨 지역이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분지 형태의 고을 특성으로 생활 형태의 변화와 공간 활용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대다수 문화재적 조형물들이 유실되고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들은 비 개발 지역에 볼품없는 형태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 도동리 주변에 산재 되어 있는 홍교(혹 운교)와 석장승 등은 도 문화재에 지정되어 반경 200미터 내에 군집되어 있다.

 운교는 조선시대 인근 군과 면에서 영광으로 진입하는 교각으로 사료적 가치와 둥근 아치 형식은 순박한 예술적 조형미가 돋보인다.

 석장승은 돌로 새긴 장승으로 해학적 민중적 표현이 특이한 장승이다. 제주 등의 돌하루방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해양도서 문화와 내륙문화가 새로운 양태로 발전한 복합 예술인 것이다.

 영광 천주교는 박해와 숭고한 희생으로부터 영광의 숭엄한 정신을 이어온 전당이다.

 더구나 이 지역 안에는 한국 현대시를 있게 한 자유시조의 비조인 조운 시인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비록 문화재로는 등록 되어 있지 않지만 해마다 수 백 명의 내방객들이 답사나 논문 연구 문학기행으로 찾는 곳이다.

 문화재가 한 두 개만 있어도 그것을 확대하고 기획하여 문화 상품화 하고 있는 것이 지역 문화 행정의 사례인 것을 보고 듣고 있다.

 누누이 거론하지만 강진의 영랑 생가는 조운 시인보다 격과 문학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지 않지만 시 속의 모란과 생가를 그 지역의 문화 상품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조운의 시에는 석류를 비롯해서 많은 꽃들이 노래되어 있다. 그것들을 소재로 문화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방치되어 있는 영광의 조운 생가가 군에서 집중 투자하고 홍보하는 다른 시인들의 생가에 비교해 뒤지지 않는 방문을 받고 있다.

 우리는 지난 해 희망을 가졌다. 그와 같이 영광의 여러 문화적 유산이 남아 있는 홍교 주변의 도동 구간이 청소년 쉼터나 문화 공원으로 만들어 진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변에 학군과 주택지가 밀집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녹지 쉼터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현 실정은 그와 정반대의 파행적 주택 개발이 허가 되어 건축을 올리기 위한 토대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글쓴이 장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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