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오랜만에 책방 정리를 했다. 정리했다기보다 책들을 모두 처분했다는 게 맞겠다. 비좁은 집에 무슨 책을 이리도 많이 전시(?)해놓고 살았는지 반성됐다. 종이와 책을 위해 희생되는 나무와 숲을 생각하면 이 또한 못할 짓인 탓이다. 지구환경을 생각한다면 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개인서재를 꾸며놓고 독점할 일이 아니라 도서관을 통해 두루 함께 읽어야 할 공공재라 여기는 게 옳겠다. 먼지 쌓인 책들을 무슨 ‘지식자랑’이라도 하듯 빼곡히 쌓아놓고 폼 잡았던 게 얼마나 부끄럽던지..... 트럭에 실어 한 차 가득 필요한 연구소에 기증하니 개운하다. 좁은 집이 넓어졌다. 책이 빈 책방엔 사진과 그림 그리고 화초와 찻상을 넣었다. 금세 소박하고 예쁜 명상방으로 바뀌었다. 책장엔 손 때 묻은 책과 신간 몇 권 남겨뒀을 뿐이지만 ‘읽고 쓰고 대화하고 생각하는 방’으로 손색이 없다. 잔잔하게 음악을 틀고 지그시 눈을 감으니 집 속의 어엿한 ‘카페’가 따로 없다. 무엇보다 마냥 좋아하는 아내 표정을 보니 흐뭇하다.

 한 때 정치범으로 여러 해 징역살이를 한 적이 있다. 0.75평 독방살이는 늘 공간과의 전투다. 옥중생활도 오래되면 살림이 늘어나는 법이라, 한정된 좁은 공간에 맞게 늘어나는 살림만큼 꼭 그만큼은 줄여야 생활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필수적인 살림만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혼자 사는 감옥 독방살이도 이러한대, 자녀들과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가정은 어떻겠는가. 요새 어떤 집은 옷방 따로, 책방 따로, 심지어 운동기구를 설비한 방까지 따로이니 웬만한 평수로는 불감당이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갈수록 너무 넓게만 살려 한다. 더 넓은 평수의 거실과 방, 가구, 대형냉장고, 배기량 커지는 자동차까지 주거공간은 계속 늘어나야 한다. 그 누가 불필요한 물건을 돈 들여 일부러 구입하겠는가만, 꼼꼼히 따져보면 ‘최소한의 필수적 살림’인가에 대해선 확신이 없다. 땅과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활문화가 복잡하고 비대해진 게 문제다. 온통 세상이 소비를 미덕이라 하고 곳곳에서 지갑 열기를 유혹한다. 길거리 공짜폰 사탕발림도 공짜일리 없고, 홈쇼핑과 백화점의 세일과 경품잔치도 장삿속 호객행위일 뿐인데 말이다. 그만큼 지출을 메우기 위해선 또다시 아이들과 대화도 못한 채 맞벌이로 밤낮없이 돈 벌어야 한다. 이른바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여민동락공동체는 특히 이사철만 되면 분주하다. 새 집 들어간다고 멀쩡한 가구며 전자제품을 버리기 일쑤여서 재활용품 수거해서 필요한 곳에 나누는 까닭이다.

 단순한 것이 최고다. 잘 먹는 것 이상으로 잘 싸는 게 건강엔 중요한 법이다. 집안 구석구석 빈틈없이 쌓아 둔 평생 한 번 쓸까말까 한 물건들을 대청소하자. 일 년에 한 번은 목욕재개 하듯 온 집안을 정갈하고 단순하게 정리하자. 미련없이 책은 도서관이나 공부방에, 유아용 놀이기구는 갓난 아이 태어난 이웃집에, 안 입는 옷은 재활용 장터에 나누면 된다. 넓은 집으로의 이사를 꿈꿀 게 아니라 사는 집을 필요에 맞고 품격있게 가꾸고, 현관문 열고 집 안에 들이는 물건은 언제나 심사숙고 판단할 일이다.

 배고픈 시대의 노동자는 임금으로 착취당하고 배부른 시대에는 문화로 착취당한다. 공동 공간은 넓게, 개인 공간은 작게 사는 법을 배워야 착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대안은 간단하다. 덜 쓰고 더 불편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얼마 전 ‘지구를 살리는 여섯가지 방법’이란 다큐멘터리를 보고 결단했다. 불필요하게 큰 승합차를 팔았다. 대신 자전거를 구입했다. 물론 업무용 겸 아내 몫의 경차 한 대를 샀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가 효자노릇을 했다. 불편하긴 해도 일부러 돈들이고 시간 내서 헬스클럽도 가지 않는가. 운동효과도 만점이다. 장거리는 통행료도 절반이고 연료비도 적게 드는 경차가 절감되는 비용만큼이나 큰 기쁨을 줬다. 쿠폰 모으는 데 선수일 만큼 알뜰한 아내는 지출이 줄자 미소가 늘었다. 어느 날인가, 설날에 먹고 남은 떡국떡이 아직도 냉동실에 있다고 있더라고 한마디 했더니, 아내 스스로 냉장고 문에 이런 표어를 붙여 놨다 . ‘냉장고를 가난하게’, ‘냉장고를 믿지 말자’.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