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 부원장

 K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나하고 동갑내기여서 항상 허물을 트고 할 말 못할 말 없이 지내던 사이의 K였습니다. 직장에서도 남이 하기 어려운 일에 앞장서 어느새 자기가 해치워 버리는 희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K만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자랑거리가 있기 때문에 왜 죽었을까 하는 의문은 순간적 이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든 K를 아는 사람이면 모두 다 그 자랑거리로 인해서 죽었다고 할 것이지 다른 이유는 끄집어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만 하면 사무실에서 자기 기록을 갱신이라도 하듯 침을 튀기며 자랑하던 그 희대의 못난 자랑거리가 운전 솜씨였으니 더 이상 무엇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나 오늘 아침에는 40분 밖에 안 걸렸어.”

 한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를 40분이라고 자랑하고 있었으니 자랑치고는 제일 못난 자랑이라는 걸 K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요.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처럼 ‘쌩’ 하고 지나가면 벌써 서너대의 앞차를 거뜬히 추월해버리는 K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가 오늘 세상을 떴다니 추월에는 사자가 따로 없다는 걸 또 한번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5분을 빨리 가려다가 50년을 빨리 간다는 표어가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엊그제 정년을 한 60대 초반인데…….

 ‘빨리 빨리’의 우리의 잘못된 의식이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담보로 하고도 빨리빨리가 다 통하더라도 도로에서 핸들을 잡았을 때 만큼은 걸어가는 것보다는 빠르게, 뛰어가는 것보다는 느리게 라는 어떤 잡지에서의 얘기가 어색스럽기는 하지만 내 생명을 지키는데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요. 운동장에서 꼴등으로 달리면서도 뒤돌아보는 소년의 여유, 그 여유가 왜 어른들에겐 없을까요.

 날이면 날마다 TV만 켜면 교통사고의 현장이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으리만큼 처참하게 우리에게 다가서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자동차는 경기나 경주가 아닌데 도로에만 나가면 100m 달리기라도 하듯 무모하게 밟아대는 운전 습관에서 세계의 교통사고 1위로 급부상했나 봅니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벌어지는 주위 사람들의 불행은 어마어마한데 나만이 쌩쌩 달리는, 그 기분을 그래도 계속 낼 것인가요.

 조심합시다. 정말 조심합시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가족이 있고 노부모가 있어 그 슬픔은 배가 되는 것이오니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까지 슬프게 해서는 안됩니다. 천천히 간다고 죽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사고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 재난에 대처할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좀더 느긋하고 느슨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도로에서만큼은 생활화합시다.

 날로 좋아지는 세상 내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는다는게 억울하지 않습니까. 불가항력이라면 몰라도 빨리빨리가 아니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부터 당장 지켜갑시다. 앞에서 이야기한 K의 죽음처럼 슬픈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한 명이라도 소중한 생명입니다. 가족적인면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적 현실에서 보더라도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새 생명이 한 명 더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살고 있는 생명 또한 더욱 중요한 처지입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운전 속도만큼은 덩달아서도 함께 따라가는 것은 정말 없어져야 합니다.

 저녁때는 K의 장례식장에 들러야 하지만 지금부터 눈앞을 가려 걱정되는 것은 늦장가로 아직 출가도 못 시킨 2남 1녀의 모습이며 거기다가 병중에 계신 노부모가 떠올라 얼른 발길이 내키지 않은 까닭 우리 모두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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