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 씨 당신의 강의에 감명 받았소"

 굴비의 고장 법성포에서 태어나고 자라, 굴비의 장인 반열에 오른 쌍용굴비 정명수사장은 "함께하는 전남교육"의 아름다운 동행자이다.

 어릴 적 가난한 집안 형편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었던 그가, 법성포초등학교 고 임종식교장과의 만남으로 가져오게 된 아름다운 동행기는 전남교육계의 미담 사례로 회자되기에 이르렀고, 전라남도교육연수원의 관리자급 연수과정마다 강사로 초빙됐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재학때 학교운영위원의 제의를 받은 명수는 초등학교졸업장도 없는 학력때문에 고민했다.

 그러나 당시 법성초등학교 교장 고 임종식은 그를 조용히 찾아와 사람의 능력은 관심과 열정이라며 운영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적극 권유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평생교육사회에서의 학력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 다”고 격려했다. 가난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나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 지내온 배움의 열망에 불을 지펴준 것이다.

 또한 "우리 전통의 식품 사업이 세계적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특색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것을 계기로 40세가 넘어 검정고시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늦깎이 공부에 열정을 불태웠다.

 낮에는 사업에 밤에는 하루2시간 거리의 법성에서 광주 고시학원을 오가며 2년만에 중․고 검정고시에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해양식품공학을 전공했다. 숱한 어려움으로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임교장은 학원 앞 포장마차에서 기다리다 좌절하며 터덜터덜나오는 명수씨를 반갑게 맞이하며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훌륭한 임교장 선생님이 있어 용기를 잃지 않고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 연수생들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힌다. 명수도 그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강의 첫날은 강의실 맞은편 벽의 시계가 보이지 않고 뿌연 안개만 가득했다. 한번 두번 거듭하자 안개가 걷히고 강의가 좋다는 칭찬 대문에 지금의 제가 이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굴비 밖에 모르고 살아오면서 교육은 학교에서 하는 것이지 학부모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 왔던 정사장. 학교는 학생교육이 주임무지만, 학부모․지역주민들에게 생각의 변화․새로운 희망과 도전의식을 깨우쳐 주기 위해 힘쓴 고 임종식교장선생님의 소통하고 상생하려했던 아름다운 경영철학은 굴비의 감칠 맛과 함께 법성포구의 갯바람에 실려 전남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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