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드는 공부’와 ‘아무포 비가’ 2편 응모

  곽일순(53․ 사진)씨가 Asia 서석문학 제15회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곽씨는 아시아 서석문학 제15회 신인상공모에 ‘사람 만드는 공부’와 ‘아무포 비가’ 2편을 응모한 가운데 수필부문 1명에게 주어지는 신인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곽씨는 “어린 시절 꿈이었던 문학의 길은 부차적인 사정들로 인해 무산 되었고, 현실에 천착해 외적인 문제에는 몸을 사리다 보니 벌써 반백 줄을 넘기고 말았다”며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 행함이 가장 빠르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서석문학의 문을 두드렸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한편 곽씨는 영광읍 출신으로 1994년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해 오는 등 영광문화예술인연합 공동대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포 비가悲歌
 
서해바다 아늑한 곳에 활처럼 휘어 든, 역사의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포구가 있으니 우리의 자랑이요 자부인 법성포다. 이곳은 아름다운 포구로 유명세를 탔었고 실제 진성에서 바라본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들어간 곡선은 환상적이다. 우리나라 어디에 이렇게 버선 뒤꿈치처럼 한국적 곡선으로 휘어져 들어온 멋들어진 포구가 있겠는가.

 조선후기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 법성포의 아름다움을 ‘작은 동정호’라 극찬 했으며,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서호(중국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라고 표기를 해 놓았을 정도이니 옛사람들이 자연을 보는 눈은 훨씬 앞섰지 않나 싶다. 우리는 이곳에 인공섬 건설이라는 역사에 기록될 죄를 짓고 말았기 때문이다. 망가진 자신의 모습에 온통 비명과 눈물로 포구는 웅크리고 있건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축제의 판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수천 년의 법성포는, 아니 그의 아비 부용포(芙蓉浦)와 그의 할애비 아무포(阿無浦)는 후손들의 칼에 의해 얼굴에 온통 상흔을 입고 추하게 변해버렸다. 1600여 년 전에 불법의 은혜를 받았던 아름다운 포구를 죽이는 역사 속의 죄인 역할을 하필이면 우리 세대가 맡은 것이다.

 사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과 조선조 왜구의 침입, 갑오농민 혁명과 구한말 활발했던 의병들의 활동 등에서 법성포는 항시 남도의 중심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남하세력이 전라도의 남부를 공격할 때 일반적인 진입로는 입암 산성과 갈재를 넘어 장성으로 향하는 육로와, 서해와 영산강 등의 강안 을 따라 진입하는 해로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법성포는 이 두 가지의 어느 경로를 택해도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특히 두 경로가 협공일 경우는 법성포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지리적인 요충지로서의 역할과 조운로와 조창, 수군 진영이 있던 곳이었으므로 당연히 일차적인 공격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법성포는 모든 시련을 이기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오늘까지 꿋꿋하게 지켜왔다. 지역민들이 의지와 자부로 돛대를 깎아 법성포 역사의 항해를 현대까지 어렵게 저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영광榮光은 없고 한치 앞밖에 못 보는 개발과 지역발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하던 법성 포구를 개발의 수술대에 올려놓은 원인이 무엇일까. 수천 년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던 법성포를 누가 무슨 이유로 흉측한 칼을 든 성형외과의 수술대로 밀어 올렸는가. 결국 우리의 잘못임을 시인하고 반성해야 한다. 포구 앞 칠색초가 아름답게 빛을 뽐내고, 꼬랑진 개펄의 곡선은 감탄을 자아냈지만 이는 위에서 흘러 내려온 퇴적토가 쌓여 점점 높아져 가는 과정이었고 실제 포구의 상가 지대보다 높아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상류의 풍천을 온통 하천 정비라는 미명아래 콘크리트로 하천 양안을 멋지게 단장을 해놓았으니 유속은 빨라지고, 빨라진 물은 흙을 밀고 내려와 하구인 법성포구 앞에 퇴적물로 남게 되었음을 환경 단체의 조언이 아니고도 아는 사람은 거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1000년 동안 쌓였던 퇴적양보다 근래의 50년에 쌓인 결과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성포 비애의 원죄이고 시작이다.

 두 번째 실수는 한시랑이의 농지 개간이다. 물론 개간 당시는 식량 부족으로 상당히 곤란을 겪었던 시대였다. 법성포구와 얼굴을 맞대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던 정도낙안(鼎島落雁)의 풍광은 가을이면 잘 익은 곡식에 둘러싸여 풍요로움을 자랑하지만 그곳에도 자연의 아픔은 크다. 이제 식량 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막을 내렸다고 보면, 한시랑이는 다시 옛날로 복원됨이 마땅했다. 그곳은 논에서 갈대밭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철새와 같이 노래했어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가히 순천만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갈대는 포구의 오염된 슬러지와 각 상가에서 흘러드는 물들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고 모여드는 철새는 법성 포구를 백수 해안도로와 연계시켜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마지막 남은 희망도 없어졌다. 활처럼 휘어들어간 아름다운 포구는 인공섬으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고,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법성포는 이제 어디에서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인공섬 주변에는 퇴적토가 끊임없이 쌓여갈 터인데 그 경비는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진실로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사실들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시랑이의 갈대밭과 포구의 칠색초가 어우러지고, 겨울이면 갈대밭에 철새가 날아들어 은선암 가는 길목에 조망대를 두고 조선에서 유명했던 법성포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 자랑하고, 백제불교도래지의 의미를 심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무참히 무너진 아무포, 부용포, 법성포는 회복불능 자신의 모습에 역사 속에서 통곡을 하고 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세대에 어찌 이리도 참혹하게 망쳐놓고 마는지 망연하기만 하다. 불갑사 앞의 수 백 년 묵은 나무가 사업장을 키우기 위한 중생衆生들에 의해 무참히 베어져 나갈 때 아팠던 마음보다도, 영광군청 내에 있었던 운금정이 통째로 헐려 나갈 때의 안타까움보다도, 만화루가 화재로 전소 되어 까맣게 타버렸을 때보다도, 법성포의 현실은 몇 배, 아니 몇 십 배의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저민다. 자연의 재앙은 항시 사람이 만듦을 알아야하고, 순리는 자연에 있으며 이를 거스르면 자연은 화를 낸다. 몇 년 전의 지리산 물난리로 동네가 깡그리 휩쓸려 없어졌던 일도 인간이 만들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지혜로 물길을 돌리고 그곳에 평지를 만들어 동네를 이루고 살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큰물이 되었을 땐 예전의 물길로 다시 찾아 흐르는 것이 자연이다. 물은 다시 예전의 길을 찾았을 뿐이지만 인간에게는 바로 재앙이었다.

 법성포는 영광의 역사다. 우리의 자랑이요 자부다. 그래서 아름다운 포구는 우리가 지켜야만 할 역사 그 자체다. 그곳에 개발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역사 속 자존심에 칼질을 하는 것이다. 조금만, 한발자국만 물러서서 현실을 보고 판단한다면 항시 역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포구, 법성포는 이제 우리 뇌리에서 지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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