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현/ 낙월면 상낙월리

  2주전인가 샤프사령관은 북한의 돌변사태(갑자기 붕괴를 뜻하는 표현인 듯)에 대비한 작전을 수립한다는 발표를 메스콤을 통해서 접하면서, 북이나 중국을 자극하는 저러한 발표를 왜 하는지 공연히 말썽이 일듯하여 막연히 의하 하였다. 또한 한편으로는 ,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비싼밥 먹고 할일 없이 그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발표하게 돼는가 하는 짐작도 생겼다. 그들 나름의 북한사태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면 2003년 말, 조선노동당 당 중앙. 인민무력부(한국의 국방부). 군 사령부 등 북한의 주요 기관에서 근무하든 18명의 핵심관료가, 북한의 고위간부의 자녀들은 망명의 위험이 있다하여 해외 출장이 엄하게 통제⁃〮 감시되는 상황이라서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함경북도 청진항에서 몰래 배를 타고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한 사실이 있는데 이들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가 다름 아닌 노동당 작전부장이자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고핵심측근인 오 극열대장의 장남 오 세욱 이었고 대부분 혁명1세대 고위간부의 자녀들로 이 들은 북한체제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의 정보당국은 장차 김 정일 체제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이들을 규합하여 망명정부 혹은 대체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주민들에게 반세기 이상을 두고 주적(主敵)으로 교육을 받아왔던 미국과 한국이 “지도자”도 주지 못하는 그 소원스러운 쌀밥을 한 끄니라도 먹여주니 북한주민의 인식이 요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예로 남한이라고 하면 왜 남조선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던 체제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남한의 대북지원으로 적대감이 사라져 체제 불안을 넘어 체제위협이 되어가고 있어 김 정일은 이러한 주민정서를 돌리기 위해서 ‘남조선은 북침의 기회를 노리는 민족의 적’이라는 실체적인 증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햇볕정책에 담긴 ‘경제지원과 교류로 한반도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문구에 자극받은 김 정일은 이후 두 차례 교전의 출발점이 되는 첫 번쩨 교시를 내린다. 1999년 4월 3일 조선노동당의 대외⁃대남전략 부서가 모여있는 모란봉구역 전승동 ‘3호청사’에 적들이 햇볕정책을 대북정책으로 고착시키는 만큼 우리는 평화협박 전술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총창위에 평화가 있다’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김 정일은 ‘체제대결을 첨예하게 유발시킬 수 있는 전술안을 통이크고 대담하게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특별지령에 따라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3호청사 구성원들은 4월 3일경부터 “두뇌진”을 총 동원하여 구체적인 ‘대적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3호청사 ‘두뇌진’은 대남 침투경험이 있거나 조국평화통일서기국 참사실 등에서 남북대화를 담당하며 남한측 인사들을 접촉한 경험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대외․ 대남전략과 관련한 김 정일의 지시가 떨어지면 그 집행을 위해 3호청사 부서들은 산하 연락소 가운데 업무능력이 가장 뛰어난 전문직 일꾼들을 엄선해 임시조직을 발동한다. 이때 이 임시조직 명칭은 김 정일이 해당 지시를 내린 날짜를 따서 결정하는데 4월 3일 김 정일이 ‘통큰전술안’ 지시를 준비하는 임무를 맡은 임시조직의 이름은 ‘43조’로 되었다.

  그러나 이미 교류협력이 진행되고 있고 특히 1998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정 주영 현대 회장과의 경제교류 협의도 있는 터라 ‘43조’가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웠다. 현대와의 경협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인민들의 대남 적대감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했다.

  여기에서 휴전협정 당시 애매하게 지어졌고 항상 문제를 삼던 서해5도가 적합한 족건으로, 여기에 착안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해경계선을 잘 이용하여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계획을 진행하였다.

6월 12일 연평해전의 직속부대인 서해함대 사령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김 윤심 해군사령관에게 직접전화를 걸어 서해사건을 일으키는데 그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끝을 내리고 말았다.

 기동력․ 화력․ 전술뿐만 아니라 해군이라는 전력 자체가 비교가 안 되는 북한의 해군은 문자 그대로 묵사발이 되었고 이러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게 된 북한 해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면 북한 해군은 일사 유사시에 남조선 군함만 보아도 오금이 저릴판이니 대단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도 남한 해군을 무찌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여기에 정규전이 아닌 그들의 상투적인 기본전략의 하나인 게릴라식 천안함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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