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사회복지학박사

커피!, 입술에 닿으면 키스한 듯한 느낌이 나고 꽃무늬가 새겨진 커피 잔에 커피를 마시면 그 향기와 그 뜨거움이 루스벨트의 말처럼 “커피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다”는 말이 절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오늘은 가을 속으로 천천히 물들어가며 진한 향기가 나는 커피를 마시러 거리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는 커피가 가져다 주는 향수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온 세상이 추적추적 거리며 불쾌지수 높아질 때, 향긋한 커피 한 잔은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닝커피 한 잔은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또한 한 낮의 식곤증에 시달릴 때 커피 한 잔이 전해주는 발랄한 메시지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마력을 가진다. 커피가 없다면 과학자들의 연구도 지금보다는 휠씬 덜 되었을 것이고, 만남을 위하여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없다보니 인간관계도 더 많이 서먹해 졌을 것이다. 또한 회의를 진행할 적에 긴요한 논의를 할 적에 많은 부분이 사무실 보다는 커피숖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커피가 없었다면 지금의 역사에서 정말이지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커피 전문점이고 커피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친구이상의 성격을 띈다. 대학에서도 잘 팔려나가는 것 중에 하나는 커피다. 학교 자판기에는 2백원짜리 블랙커피, 2백원짜리 프리마커피 부터 3백원짜리 밀크커피까지, 무려 대여섯 종류나 있다. 무심코 주머니 속에 몇 개의 동전이 있고 약간의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자판기를 향해 간다. 동전을 집어넣자 컵이 톡 떨어지며 물이 쫄쫄 떨어진다. 10초도 채 안되어 작은 종이컵 속에서 달콤한 내음과 김을 무럭무럭 뿜어내는 인스턴트한 즐거움을 손안에 쥐고서 강의실과 연구실로 서둘러 가고한다.

달콤하면서도 지나치게 달지 않은 커피는 섬세하기도 하고 초콜렛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기절할 정도로 나를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가을은 사계절 가운데 심신이 가장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우리 선조의 생활의 지혜와 정서가 담긴 속담엔 가을을 소재로 한 것이 유독 많다. ‘가을 들판이 딸네 집보다 낫다’‘가을 들판이 어설픈 친정보다 낫다’. ‘가을비는 떡비요, 겨울비는 술비다’ 같은 속담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이렇듯 계절의 변화와 가장 절친한 맛이 커피일 것이다. 요새는 가을을 느끼는가 싶으면 겨울이다. 아주 잠깐이다. 뒤이어 떨어지는 새벽의 찬바람에 이슬. 서리가 되어 떨어지면 여름내 독을 쓰며 덕으로 뻗어오르던 식물들이 잎사귀를 널부러뜨리며 시르죽죽 죽어간다. 청정하기만 하던 가을의 코발트색 하늘도 점차 회백색으로 빛을 바꾼다. 마치 커피색 향기를 느끼는 정취와 같다.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질 않는다. 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게 하는, 누군가를 보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다. 거리에 낙엽이 떨어져 고독하다고 외치며 뒹굴고 모든 것들이 외롭게 보이기 시작해졌다. 낙엽이 뒹구는 쌀쌀한 날 오후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마시는 커피와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고독 그 자체를 즐기는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매게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가을 커피를 마시면 나조차 가을 색감에 물들어가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어디론가 한없이 걷고 싶어진다.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들을 다정하게 나누고 싶어진다. 가을 속으로 마냥 빠져든다.

가을과 커피는 색감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가을에는 유난히 커피를 자주 찾는다. 커피에는 세 가지 인생의 맛이 있다고들 한다. 쓴맛 단맛 프림맛이다. 쓴맛은 절망 고통 아픔의 맛을 느끼게 하고, 단맛은 기쁨 행복 감동의 맛을 느끼게 하고, 프림은 아리송한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이 세 가지가 조화되어야 커피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음악가 바흐는 하루에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의 '커피 칸타타'(1732)는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다'는 표현이 반복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독일인이 마시는 커피는 설탕이 듬뿍 들어가서 몹시 달았기 때문이리라. 반면 커피는 근면과 주도성과 성실성의 음료이며 알코올의 안티테제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취해서 흐리멍텅한 상태였던 유럽을 깨우는 '한마디로, 이성의 시대에 이상적인 음료'가 되어 종교개혁을 대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

사계절 중에서 커피가 가장 맛있는 계절은 가을이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국처럼 달콤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커피 한 잔도 이토록 멋지게 표현하는데 우리는 삶을 정말 감탄하고 환호하고 싶을 정도로 멋지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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