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전 한농연 영광군연합회장 대추귀말자연학교장

  들녘이 온통 추수로 난리다. 여기를 가도 콤바인소리가 웅웅거리고 저리를 가도 누런 들녘은 한 순간에 휑한 논바닥이 뱃살처럼 드러나 보인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추수한 곡식의 누런 황금덩이를 앞에 놓고 선 농부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질 않는다. 도리어 깊게 패인 주름살이 가을 뙤약볕에 그을려 더욱 깊어 보인다. 만족과 감사가 넘쳐야할 농촌이 왜 이리 삭막해 졌단 말인가? 한▪EU와 한▪중 FTA가 착착 진행되어 가는 소리에 이젠 기가 질려 뭐라고 대꾸질하기도 싫은 농사꾼들은 어디 머리둘 곳이 없어 쾡한 시선만 이리저리 논바닥을 달리고 있다. 과연 우리의 농촌엔 희망은 없단 말인가?

  그런 중에 몇몇 뉴스들이 영광 논바닥을 쓸고 다닌다기에 귀를 세우고 들어봤다. 그 중 두어가지 농업에 관계된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뉴스는 지난주에 있었던 쌀 문제에 대한 막장토론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특별한 것이 없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토론 무용론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농민이라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에 대해서 어디서도 속 시원하게 말을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던 농민들이 자기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토론회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속 시원한 결론은 못 냈지만 이것이 시작이 되어 새로운 담론거리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런 장을 만들고 영광의 농민들에게 소통의 장을 만들어준 농민단체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두 번째 뉴스는 지난 영광신문에 기사화되었던 <영광농업 포괄사업 5개년 계획>수립에 관한 내용이다. 군에서는 중앙부처의 포괄보조금 제도 시행에 따라 지금까지 시행되어왔던 200여개 지역개발 계정사업을 22개 사업군으로 통폐합하고 중앙정부에선 통폐합되고 재조정된 사업군에 포괄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신동력 산업>을 육성코자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관내 6개 실과와 농어촌공사가 참여해서 2014년까지 3개부문 (농산어촌개발 사업군, 농어촌자원 복합 산업화 사업군, 농어업기반정비 사업군)에 4,050억원 규모의 자체적인 안을 만들고 이에 대한 좋은 평가를 전남도로부터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박수를 보내야함이 옳은 일이건만 한편으론 안타까움에 속이 불쑥거리는 것은 왜일까?

  어느 한쪽에선 길이 없다는 일을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며 서로의 마음을 부둥켜안고 신음하고 있는 한편, 다른 어느 한쪽에선 영광의 농업 5년에 대한 청사진을 명석한 머리를 가지신 공무원들끼리 정하고 잘했다는 칭찬까지 들으셨다니 왠지 모를 서글픔과 비애감이 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란 옛이야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제발 행정이 같이 가야할 상대인 상대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가져야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의 힘만이 절대 선이 되어버린 신자본주의 시대에 기로에 선 농업에 대해 행정과 함께 고민의 편린을 바라는 것이 사치인 것인가? 이제 좀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소통과 상생> 21세기의 화두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이다. 그리고 나부터 그 명제를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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