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연말연시는 사람들에게 아쉬움도 주지만 새해에 대한 희망으로 들뜨게도 한다. 달력 한 장에 따라 해가 바뀌게 되니 사람들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정해진 수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있어 송구영신은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도 만든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유난히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아지고, 타인에 대해서도 관대해지기 일쑤다. 그러한 까닭에 연말연시가 되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눈길이 더욱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줄 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는 도통 연말연시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사랑의 기부행렬이 눈에 띄게 줄어든 까닭이다. 소외된 이웃들은 경기침체와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한 불안감에 온정의 손길마저 뚝 떨어져, 그 어느 때보다 추운겨울을 보내야 될 듯싶다. 도대체 누가 세상 사람들의 기부 인심을 이렇게 싸늘하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일부 직원의 비리 때문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거리에 울려 퍼지던 캐럴송이 어느 순간부터 크게 줄었듯이, 옷깃에 달린 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를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길게 줄을 지어 작지만 소중한 사랑을 모금함에 집어넣던 정다운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이 쯤 되다보니 국민들의 따뜻한 모금액이 늘수록 쑥쑥 올라가던 사랑의 온도계 눈금이 그립기까지 하다. 나눔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공동모금회가 지금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불신과 외면을 받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한 사람으로써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10월 국민들이 낸 성금의 일부가 몇 몇 ‘공동모금회’ 직원들에 의해 부적절하게 집행된 사실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공동모금회를 믿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성금을 맡긴 국민들의 허탈감은 너무나 컸다. 무엇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동모금회에서 터진 비리인지라 언론의 질타도 날카로웠다. 전국의 모금 열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모금이 연말연시에 집중되는 점을 감안할 때 올 해 모금사업은 이미 실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금액이 곤두박질을 치자 벌써부터 어려운 이웃들과 사회복지 시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국민들의 귀한 성금은 이들에게 희망이자, 생명이고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껏 공동모금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성숙한 모금 문화와 신뢰도 이번에 함께 무너졌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 공동모금회는 국민들이 든 회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단단히 혼이 난 공동모금회는 국민들의 무서움과 신뢰의 중요성을 새삼 가슴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되돌아보지 못했던 공동모금회는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뼈아픈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새해에도 이웃돕기 성금을 내는 손길이 여전히 줄어들 것으로 보여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었던 기부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불행이다. 많은 사회복지시설의 종사자들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엄동설한에도 전기세가 아까워 전기장판 1단을 켜고 주무시는 독거노인을 도울 일이 걱정이다. 봉사자가 집으로 찾아가 전해주는 식사 한 끼로 하루를 살아가는 장애노인의 아픔을 달래줄 길도 막막해졌다.

  국민들의 기부가 줄어들면 우리 사회의 희망도 그만큼 줄어드는 법이다. 당분간 주는 기쁨도, 받는 고마움도 보기 어렵게 생겼다. 답답한 마음에 국민들께 간곡히 호소 드린다. 공동모금회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질 수 있도록 회초리를 들되, 나머지 한손은 기부를 위해 소중히 사용했으면 한다. 이런 때일수록 공동모금회를 더 올곧게 키워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공동모금회를 유일하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다. 용서는 힘과 용기 있는 자가 할 때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국민이 만들어낸 공동모금회. 그 무서운 힘으로 이들에게 더 큰 봉사의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기부금액과 열악한 기부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그래도 살맛이 나는 나라였다. 우리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뜨거운 정과 나눔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서 멈출 수는 없다. 공동모금회가 보기 싫다고 어려운 이웃들을 사랑에 굶주리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자괴감과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국민들의 속상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기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웃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죄 없이 날벼락을 맞은 이들의 심정을 헤아려주면 고맙겠다.

  새해가 밝았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사람의 정이 더욱 그리운 때 이다. 새해에는 콩 한쪽도 나눠먹던 우리의 좋은 인심이 널리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떨어져 있던 나와 너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기적. 그것이 기부의 가장 큰 힘이다. 2011년 새해. 복을 받은 만큼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눈 만큼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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