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원장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어느 시인이 건넨 말을 묵상하곤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때는, 먼저 ‘어떻게 살지 말 것인가’를 생각하란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변화할까 먼저 생각하지 마라,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과 결코 해서는 안 될 것을 먼저 생각하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유연하게, 작지만 꾸준히 밀어가면 마침내 삶의 막막함이 풀리고 환희의 때가 온다하니, 이 얼마나 지당하고 마땅한 웅변인가.

 

그렇다. 저마다 땀 흘려 노동하는 모든 직분은 거룩하다. 그 거룩한 직분 아래 결코 변해서는 안 될 ‘최선’과 결코 해서는 안 될 ‘최악’을 일관되게 구분하고 살아야 개인과 공동체 모두 건강할 수 있다. 특히 세상의 평화와 영적 성숙을 위해서 우리 사회에 한결같이 거룩해야 할 ‘4대 성직’이 있다는 생각을 평소 하고 산다.

으뜸은 영적 지도자이신 수도자임이 당연하다. 그 다음은 교사다. 교사가 거룩해야 미래가 건강할 수 있는 법이다. 교사가 바로서야 미래희망의 초소가 바로 세워지는 법이다. 또 하나의 성직은 바로 사회복지사다. 세상의 복판보다 가장자리를 먼저 챙기며, 그들과 이웃이 되고 그들을 먼저 사랑하며, 마침내 모든 사람이 존엄함을 잃지 않는 삶이 되게 거들어 드리는 사회복지사의 사명이야말로 거룩함을 잃지 않아야 할 성직이어야 마땅하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교도관이다. 종교와 학교와 사회복지가 해결하지 못한 지상 최대의 지옥, 바로 그곳은 감옥이다. 그 감옥 안에서 때로는 선생님으로, 때로는 사회복지사로, 때로는 영적 상담가가 되어가며 동고동락하는 교도관이야말로 수인의 삶을 갱생의 길로 안내하는 최고의 성직자다.

 

합리적 설득력의 시대에서 도덕적 감화력의 시대로 진입한 오늘, 우리는 복지현장에서 어떻게 거룩함으로 세상과 만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성직이어야 할 사회복지사가 변해서는 안 될 ‘최선’과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을 염두하며 어떻게 세상을 바꿔가야 할지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고 했다. 사회복지가 영업이 되거나 사회복지사가 영업사원이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사회복지가 더 낮아지고 깊어지고 가난해져야 한다. 온통 복지담론으로 떠들썩한 요즘, 그 텅빈 속이 뻔한 정치 과잉의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땅을 일구고 손발을 놀려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키울 것인지 학습하고 노동해야 한다.

 

이제 사회복지는 콘크리트 복지의 칸막이를 넘어, 바야흐로 공동체의 협동과 연대를 통해 공공선을 이루는 중심으로 그 본령이 전환되고 있다. 우정과 환대의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뜻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는 밥상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사업이 새로운 사명이 되고 있는 시대다.

요새 영광과 광산구를 드나들며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생각하는 바가 크다. 여민동락공동체와는 달리 새로 시작한 광산구노인복지관 운영은 몸보다 머리가 앞선다. 하루에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주민들이 600여 명이나 되다보니, 땀 흘려 힘쓰는 몸노동은 없고 주로 상담하고 결재하면서 머리 잘 쓰는 일이 전부다. 사회복지사들은 반 평짜리 사무용 책상에 갇혀 서류업무에 치여 살고 있다. 십 수 억 되는 예산을 탈 없이 집행하는 게 주된 업무인 ‘부자복지’를 하다 보니, 그들에겐 손톱에 때가 낄 까닭도 틈도 없다. 그들에겐 아직 도농복합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관장의 포부를 담아낼 여력도 철학도 없다. 그들의 노동없는 하얀손은 냄새나는 퇴비와 뒹굴고 주름지고 때가 낀 노동의 손을 섬길 정열도 없다. 그러니 어찌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를 이루고 땀 흘리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겠는가.

그래서다. 작심하고 바꿔가고 있다. 죄다 개량하고 보수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뜻을 바꾸는 옹골찬 개혁을 하고 있다. 국가가 인건비를 대고 건물을 지어주고 십 수억씩 돈을 갖다 주는데도 제대로 된 감동과 영혼의 울림을 주는 복지현장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 또한 해서는 안 될 ‘최악’인 탓이다.

 

당연하고 지당하다. 누가 뭐라해도 사회복지사는 성직이고 성직이어야 옳다. 성직의 본래적 사명은 사람과 자연과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구체적 노동과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야말로 그 노동과 사랑의 사회적 확장을 이루는 거룩한 실천가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복지사인 나부터 스스로 끈질기게 곰곰이 생각하고, 진솔하게 몸으로 살아내야 할 오래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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