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니뽕이다.”

해방 후, 이승만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던 미국 대표단이 기차여행 도중 겪었던 이야기이다.

고속전철이 등장하면서 서울과 부산이 한나절 생활권으로 바뀌어버린 현재와는 달리 하얀 증기를 길게 뿜어내며 산과 들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느릿하게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것만도 큰 구경거리이던 시절이었다.

미국대표단이 차창을 스쳐가는 한가로운 한국의 전원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 철로변에 늘어선 한 무리의 소년들이 열차를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쥔 체 왼손바닥에 주먹 등을 대고 상대방을 향해 팔꿈치까지 힘차게 밀어 올리는 이른바 주먹삿대질(體言)이었다.

해방전, 일본인들을 향해 “니뽕(니폰)이다.”라고 주먹삿대질을 해대며 “이거나 먹고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는 뜻을 암시하는 몸동작이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해방 후에도 자신에게 미운 짓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를 달리던 버스나 기차 등 이질적인 문명을 향해서도 습관적으로 주먹질을 해대곤 했는데 이 모습을 미국의 대표단이 보고 말았던 것이다.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몸동작의 뜻을 묻는 대표단에게 한참동안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던 통역관이 둘러댔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오면 소년들처럼 주먹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고 통역을 해주었던 것이다.

결국 사건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에 벌어지고 말았다.

이대통령을 만난 미국대표단이 이대통령을 향해 일제히 주먹삿대질을 해댄 것이다.

당황했던 이대통령이 통역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야 노기를 풀 수 있었다고 전한다.

“니뽕이다(너는 일본놈이다).”라며 주먹으로 하는 삿대질은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어린 아이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했다는 서동왕자처럼 일본의 패망을 원했던 한국의 민초들이 온 몸으로 표현했던 갈망이 하나의 체언문화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가장한국적인 문화

미국 맨해튼의 중심부에 있는 번화가인 타임스퀘어 거리의 유명한 영상광고에 우리나라의 비빔밥 광고가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난타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한국의 비빔밥을 세계에 홍보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전통 문화에는 비단 비빔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권도와 김치, 불고기, 한글, 한옥, 사물놀이 등등, 우리는 그야말로 세계 어느곳에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전통문화를 소유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외국인들이 자국이 아닌 해외로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이유가 있다.

자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고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 나라에도 있고 저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면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해외에 까지 나가 구경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어느 곳에서도 대할 수 있는 문명으로는 해외 여행객들을 끌어 들일 수 없다는 반증인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우리 고장 영광에도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이 있다.

법성포 단오제가 그 것이며 원불교 성지와 백제불교 도래지, 백제불교 초전 가람지인 불갑사, 그리고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을 살린 백수해안도로가 있으며 상사화와 천연기념물인 칠산섬 노랑부리백로와 참식나무 군락지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앙정부로부터 지자체 브렌드 대상까지 수상하며 영광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천년의 빛”이 서려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스포츠 행사를 제외하면 우리 영광은 머무는 관광에서는 조금 비껴나 있다는 느낌이다.

풍부한 먹거리 문화를 간직했으면서도 일부 한식당을 제외하면 먹거리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있다.

법성포 단오제이다.

한 때 강릉단오제와 쌍벽을 이루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로 만족하고 있을 뿐 정작 아끼고 발전시켜야 할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멀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영광만이 가질 수 있는 전통문화를 살려 세계인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어들이는 일이 중요한 일이기에 법성포 단오제 같은 큰 행사에 지역 주민들의 적극 참여는 더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주먹삿대질까지도 한국의 소중한 문화로 여겼던 서양인들, 그들의 관심과 구미를 당기기 위해서는 우리 영광만이 간직한 전통 문화를 개발하여 선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며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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