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12년 지낸 3자매 사연

초등학교 1년 때부터 두 동생과 함께 12년간을 사회복지시설에서 자란 김혜진 양의 바람은 건강을 되찾은 아빠∙엄마∙동생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꿈을 꾸는 김양은 다음 달 취업이 예정된 가운데 신장수술이 필요한 아버지의 병수발 걱정에 눈물로 밤을 새우고 있다. 효녀 심청도 울고 갈 사연.

 

두 여동생 가르치려면 대학보다는 취업을...

“중증 병든 아버지 두고 어떻게 떠나나”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인 김혜진(19)양에게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든 고난을 안겼을까? 15일 찾은 염산면 사랑의 집은 김양이 12년간을 생활한 집이다. 꼬불꼬불 산속에 자리한 아동양육시설인 이곳은 김양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두 여동생과 함께 맡겨진 곳이다. 이날 만난 김 양은 “그 때만해도 ‘아빠 건강이 좋아지면 금방 데려갈게’라는 희망적인 말에 두 여동생과 함께 그날만을 기다려 왔다”고 한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족들이 함께 따듯한 정을 나누는 날이면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내심 아빠가 하루빨리 건강해져 금방이라도 데리러 오길 바랐다. 그게 벌써 12년이나 지났다.

시설에 맡겨진지 얼마 안돼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이 빙빙돈다”며 병원에 간 아랫 동생이 제대로 못 먹은 탓인지 재생불량성 빈혈로 판정돼 병원도 포기하는 지경에 하늘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세상은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안겼을까?” 고민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이 많지만 그 보다는 어린 두 여동생을 돌보는 게 먼저였다.

다행히 동생은 여러 우려와는 달리 병마를 이겨내고 아직 철부지지만 공부도 잘하는 어엿한 소녀로 자랐다. 시설 운영 초기 어려운 상황에 입소한 김양은 동생의 병까지 치료해준 사랑의 집 이연숙 원장을 자연히 엄마로 부른다. 사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세자매가 영광인 이곳에까지 맡겨진 데는 아버지 김흥중(49)씨가 이 원장 동생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잠깐 부탁한 아이들을 12년간이나 돌볼 줄은 몰랐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김양을 포함한 세자매와 함께 남동생도 있었지만 고모 밑에서 자라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다렸던 엄마마저 이들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난 상황이다.

그나마 십 수 년간을 아빠가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하나로 버텼지만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당뇨합병증에 뇌병변장애, 장복막 등으로 신장기능이 7%도 작용하지 않는 중증환자다.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병원 측의 진단에 병문안을 다녀온 김양이 눈물로 밤을 지샜다.

사연을 전해들은 이 원장이 문병을 갔다가 아예 아버지 김씨를 지난 5월 시설로 옮겨왔다. 식사 때마다 부르러 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서다. 병들고 초췌한 아버지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지 김양은 하루 5번씩 하는 투석도 마다하지 않고 용변 문제 등 아버지 수발이라면 온 정성을 다한다. 버려졌다고 원망도 할 텐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김양은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김양이 눈물을 쏟는 모습이 부쩍 늘었다. 다음달 7월이면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대기업으로 취업을 나가기 때문이다. 어린 동생들에게 아버지 모시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못내 아쉬운 탓인지, 아니면 못 미더운 탓인지 밤이면 또다시 눈물이다. 아버지를 두고 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굵은 눈물을 연신 떨어뜨렸다. 그래픽 디자인에 소질이 있어 전문 일러스트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원장이 학비 지원과 함께 대학진학을 주선했지만 김양은 두 동생과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취업을 선택한 것. 애써 눈물을 감춘 김양은 “신장수술 등으로 아버지 병이 나아 엄마, 세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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