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프리랜서

“강남의 수해는 ‘부자동네의 일이니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반응을 낳았다. 뉴스의 초점이 ‘강남’이라는 지역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가자는 제의에 따라 동두천에 갔다. 이번 재앙의 심각성을 알았다. 자원봉사자들의 서툰 삽질이 이재민들에게 의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확인 했다 ”

서울 강남이 물폭탄을 맞았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강남 일대가 수영장처럼 물이 차올라 자동차가 빠지고 행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산사태가 나고 대기업 회장의 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숨졌다. 분명 심각한 사태가 발생 했다는 것은 알겠으나 왠지 예전과 같은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부자들이 몰려 사는 지역이니 피해가 크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서울시가 부자동네인 강남에만 무상급수를 하고 여름 휴가용 수영장까지 제공 했다는 등의 ‘패러디’가 쏟아지기도 했다. 재난 보도는 그 심각성을 알려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하거나 대피토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번 폭우가 몰아온 재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도 내용이 “부자 동네에 수해가 났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부자들 동네이니 우리가 발을 동동 굴릴 일은 아니라는 국민적 반응 일 수 밖에 없었다. 재난 보도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명감을 가졌더라면 “부자 동네에서 벌어먹고 사는 서민들이 재앙을 당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야 했다. 기자들이 고생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하러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예비역’기자의 호기심과 ‘나이값’을 하자는 마음이 겹쳐 흔쾌히 나섰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들어서니 이번 재앙의 실체가 보였다. 뻘과 쓰레기 더미가 도로 양켠에 줄지어 서있고 복구에 나선 민․관․군과 각종 장비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상가는 ‘폐허’ 였다. 비가 그친 사흘째 였지만 장사는 커녕 못쓰게 된 물건들도 다 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분노도 슬픔도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 안에 물을 가득 담았다가 뱉어낸 흔적이 역력한 차량들의 모습에서 ‘재앙’을 당한 동포들이 겪었을 고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산 아래 동네. 집안이 온통 물에 개여진 흙더미로 가득하다. 기둥과 지붕이 무너지지 않은 것이 용하다. 어린 학생의 일기장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부터 손녀에 이르기까지 한집안의 수십년 역사가 담긴 앨범도 진흙더미에 묻혔다. 산아래 동네의 유일한 점포에 있던 상품들도 모조리 쓰레기로 둔갑 했다.

나뭇가지와 뒤엉켜 삽날 조차 찔러넣기 힘든 흙더미들과 함께 이재민들의 고통과 절망도 함께 퍼낼 수 있길 바랐다. 일행들 모두가 제법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한나절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가라앉았던 동네의 분위기가 조금은 살아나는 모습이다. 무표정한 얼굴들에 표정이 나타나고 물과 막걸리까지 내놓았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더 이상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주지 않는다며 원망의 눈물을 보이는 할머니에게서 삶의 의욕을 보았다. 우리의 능력이 닿는한 최선을 다하고 뒤돌아 섰지만 왠지 미안하고 죄송하다.

재앙이 발생할 경우 가능하면 모든 국민들이 피해지역의 복구에 나서야 하겠다는 때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돈과 장비만 있다고 피해가 복구되는 것은 아니다. 돈과 장비로도 안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다.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서 일을 함으로써 의욕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잦은 기상이변으로 갈수록 재앙은 늘어날 것이다. 이번에는 중부지역이지만 언제 우리동네가 재앙의 중심이 될줄 모른다. 다른 동네 재앙에 우리가 팔 걷어부쳐야 우리동네가 일을 당하면 남의 동네 사람들이 우릴 부축해줄 것이다. 아직 늦지 않다. 당장이라도 봉사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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