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프리랜서

“도청 이전으로 충장로와 금남로는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 됐다. 공동화 극복의 대책으로 ‘추억의 7080 충장축제’가 태어났다. 얼마 못갈 것으로 생각 했던 충장축제가 성공한 축제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함께 충장로와 금남로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것으로 확신 한다”

경제가 어려울 말들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마다 한두 개 이상의 축제가 벌어진다. 명분은 축제를 통해 관광 수입을 올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그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지만 그 많은 축제들이 모두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자체가 밝히는 효과는 간접효과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장이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축제도 있으리라 믿는다.

전남도청이 목포로 옮겨 가면서 광주의 충장로와 금남로를 비롯한 동구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가속화 됐다. 충장로는 서울 명동, 부산 남포동, 대구 동성로와 함께 전국적으로 인파가 넘치는 거리로 유명 했다. 그러던 충장로도 도청 이전의 충격을 빗겨가지 못했다. 해마다 눈에 띄게 한산해져 갔다. 경기가 시들해 졌다. 천정부지의 땅값도 곤두박질 쳤다. 도심공동화 대책으로 광주시 동구청과 충장로 상인들은 2004년 ‘추억의 7080 충장축제’를 개최, 쇠퇴해가는 광주 도심 상권의 부활을 꾀했다.

광주에 살면서도 그 효과를 의심 했다. 축제를 연다고 충장로가 되살아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축제도 얼마 못가 없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웬걸 충장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가 커졌다. 덕분인가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던 충장로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추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어찌됐건 축제의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로 8년째인 충장축제는 국가대표급 거리축제로 발전 했다. 개막일인 지난 27일 충장로와 금남로에는 인파가 넘쳤다. 집을 나섰다 하면 몰려가던 충장로의 추억을 찾은 7080세대들과 중·고교생들이다.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한 팀이 전국 각지에서 몰렸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참가 했다. 80개 팀이란다. 인디언의 공연, 밸리 댄스, 중국의 무용, 일본의 코믹마임, 미8군 밴드 공연, 사물놀이, 스포츠 댄스 등의 판이 벌어진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는 인산인해 이었다.

충장로의 ‘안간힘’으로만 비춰졌던 충장축제가 8년 만에 국제적인 거리축제로서 성공한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선 것이다. 개막식에 참가한 전국의 자치단체장도 30여명에 달했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축하 사절들이 왔다. 행사 내용이나 시민 참여도 등으로 미루어 명실 공히 성공한 축제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전국 각지에 알맹이 없이 예산만 낭비하는 축제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충장축제의 성공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고교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없으면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갔다. 한 시간만 서 있으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우리는 ‘우체국’ 이라 하지 않고 ‘우 다방’이라 불렀다. 우체국 앞이 만남의 광장 이었던 셈이다. 핸드폰과 ‘삐삐’는 상상도 못하고 전화가 있는 집도 드물던 시절 ‘광주 사람’들의 친구를 만나는 무언의 약속 이었고 지혜였다. 축제 인파에 섞여 지나간 날들의 달콤한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좋았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은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충장로의 ‘안간힘’이었던 충장축제는 광주의 새로운 ‘명물’로 탄생 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함께 충장축제는 아시아의 ‘명품’ 축제로 재탄생할 것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도 톡톡히 얻을 것으로 믿는다. 공동화의 아픔을 딛고 충장로와 금남로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것이라 확신 한다. 추억을 찾는 시민들과 문화를 찾는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충장로 파이팅” 이다. “광주 파이팅”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