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도가니’가 최대 화두다. 공지영과 황동혁은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나라안 모든 일에 편법과 불․탈법, 봐주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때맞춰 정치권도 ‘도가니’에 빠진 모습이다. 나라 전체에 불이 난 형국이다. 좋은 집이 새로 지어져야 한다”

현대인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쁘다’가 아닐까. 개인은 물론 단체나 기업, 국가까지 바쁘게 돌아간다. 경제문제에 조금만 게으름을 부리면 경쟁에서 뒤쳐진다. 경제의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문화 때문이다. 심지어 삶의 질을 평가할 때도 경제문제를 맨 먼저 따진다. 주관적으로 가장 높은 삶의 질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철학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는 다르다. 경제적 문제의 해결 여부를 맨 먼저 따진다.

‘인간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것이 더 높게 평가되다 보니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경제만 쫓느라 바쁘다. 경제적 이익이 없는 사람은 만날 시간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경제를 따지지 않았던 과거에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 해도 ‘생활인’이 된 뒤에는 ‘잘나가는’ 친구들끼리만 어울린다. 가치관이나 철학을 말하는 사람은 머리 아픈 존재가 돼버렸다. 경제 즉, 돈을 쫓아 부지런히 뛰어 경제적 성공을 해야 친구도 생기고 대접을 받는다.

세태가 이러니 사람 세상이 온통 돈 싸움의 ‘도가니’ 속에 빠진 듯하다. 이 ‘도가니’가 올해 대한민국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작가 공지영이 소설화 하고 이를 황동혁 감독이 영화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를 고발한데 따른 것이다. 장애인 복지 사업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장애인들을 상대로 성욕을 채운 늑대들이 연출한 광란의 도가니는 ‘재판’이란 과정을 통해 면죄부를 받은 사건이다. 이를 공지영과 황동혁이 다시 꺼내 사회에 고발한 것이다.

‘도가니’는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인화학교가 다시 도마에 올라 섹스는 물론 돈 까지 미쳐 날뛴 광란의 도가니를 본 국민들이 흥분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전국이 물 끓듯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교사가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라도 본다.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반적으로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화학교 사건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나라 안 거의 모든 일에 편법과 불․탈법, 봐주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 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 시스템은 전체가 문제점투성이다. 사건의 재판도 피해자들이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 됐다. 심지어 처벌 받은 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장애인 복지 사업을 한다는 미명하에 일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았다. 행정 기관도 교육청도 이 같은 실상을 몰랐거나 눈 감았다. ‘도가니’는 직접적으로는 이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것이지만 확대해 살펴보면 돈과 섹스, 거기에 권력까지 광란의 도가니에서 춤추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고발한 것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눈감지 않고 흥분해서 들고 일어나는 ‘양심’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때맞춰 정치권도 ‘도가니’에 빠진 모습이다. 기존의 정치 질서 속에서 잘 먹고 잘살던 정치권이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치로는 역사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안철수와 박원순의 메시지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정치 경험이 없는 박원순이 ‘소통령’이라는 서울 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사실은 정치권이 현재의 모습을 벗어 던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국민의 정치권을 향한 경고다.

불이 나야 집을 새로 짓는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잘못된 것들이 ‘도가니’에 담겨 발가벗겨 졌다. 대한민국 이라는 집에 불이 난 형국이다. 새 집이 지어져야 한다. 삶의 질이 높은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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