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친구들아 이웃들아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다투고 외면 해야 하는가. 우리 이 봄에는 옛날로 돌아가자. 날선 공방이 오간다. 상처 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게임 하듯 승부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들에게 예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를 들이미는 상상을 해본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김동환 님의 시를 노래한 박재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꽃샘추위에 정나미가 떨어지더니 봄은 이렇게 하룻사이에 성큼 문 앞에 다가 왔다. 동지 쇠고 걸어둔 옛 선비의 구구소한도 속 81송이의 매화도 어느덧 모두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수명을 다했으리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을 머릿속에 그리며 봄을 맞는다.

봄은 분명 이렇게 밝고 따스하게 우리를 싸안는다. 친구들아 이웃들아 모두 움츠렸던 몸을 쫙 펴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성큼성큼 걸어보자. 봄볕처럼 화사한 미소로 희망을 노래하자. 우리가 언제부터 내편 네편 으로 갈라져 살았는가. 우리 모두는 친구이고 이웃사촌이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언성 높여 다투고 삿대질 하며, 무시하고 외면해야 하는가. 우리는 원래 기쁨은 나누어 더욱 크게 하고, 슬픔은 나누어 잊도록 하는 사이 이었다. 우리 이 봄에는 옛날로 돌아가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경제를 입에 달고 살기 이전에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법이 몸에 배여 있었다. 이웃 간에 말로 상처 받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등 따숩고 배부른 시대로 접어 들면서 우리 사회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날선 말들이 난무 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상대가 받을 상처 따위는 아랑곳 않는 말들이 날아다닌다. 심지어 상대에게 심한 모욕을 주거나 큰 상처를 주는 말들이 박수를 받기까지 하는 삭막한 사회가 돼버렸다.

내가 사는 지역, 거기에 사는 사람들 모두는 나의 울타리다. 나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라. 내 집에 불이 나면 누가 불을 꺼주겠는가. 이웃이다. 도둑과 강도, 폭력으로부터 누가 당신을 지켜 주겠는가. 법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웃이다. 아무리 호의호식 한다 해도 이웃이 헐벗고 굶주리면 편할 리가 없다. 이웃에서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듣고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다. 부도 권세도 이웃의 축복과 박수를 받아야 빛이 난다. 혼자만 누리는 부와 권세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경주 최 부잣집이 13대 400년, 부자 소리를 들은 100년을 합하면 500년에 걸쳐 부를 지키고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는 것도 이웃의 고통을 몰라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최장수 부자 가문을 존속 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최부잣집은 일본 강점기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했다. 구례 부사 유이주가 타인능해(他人能解·다른 사람도 열 수 있는)의 뒤주로 세세손손 칭송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웃과 더불어 산 이들의 삶이 시쳇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다. 후손에게 이보다 더 귀한 유산은 없다.

공사 중인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했다. 해군은 이를 고소했다. 한미 FTA도 정파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간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의 방안을 찾자는 것인지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싸움인지 ‘애매’하다. 국론의 분열과 갈등만 더해가고 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싸움 보다는 진지하고 끈기 있는 대화와 타협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임을 왜 모르는가.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자는 5·18을 ‘반란’, 제주 4·3사태를 ‘폭동’ 이라 했다. 당사자와 후손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이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거시기’하다.

넉넉하고 행복하며 활기차게 봄을 맞자는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보다는 더 꼬이게만 하는 사나운 입들은 막아버리고 ‘옐로우 카드’를 들이밀자.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해법 찾기보다 마치 무슨 게임이나 하듯 승패에 사활을 거는 개인이나 집단은 ‘레드카드’로 퇴출 시켜 버리는 것이다. 봄볕 따사로운 성산에 올라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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