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맛이 지독하게 쓴 고향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최고의 엔터테이너’ 공옥진이 불쌍한 노인네로 살다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가수 이미자씨가 단오제 행사장에서 부르던 노래를 중단 했다는 소식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몰상식과 목민관을 자처하는 벼슬아치들의 권위 의식이 빚은 사건들이다”

고향 소식은 언제 들어도 ‘맛’있다. 누구네 자식 결혼 했다거나, 출세했다거나, 돈 많이 벌었다는 등의 소식은 달다. 질병·사망·사업 실패 등은 쓰다. 잠시 동안이지만 기쁨과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유독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을 안기는 쓰디쓴 맛의 소식들도 있다. 최근 잇따라 전해진 두 건의 고향 소식이 그렇다. 지난 달 단오제에서 벌어진 일과 엊그제 세상을 떠난 공옥진 씨의 부음이다.

두 ‘사건’의 ‘맛’이 지독하리만큼 쓰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의 몰인정과 오만이 그 사건의 뒤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 여사의 죽음은 국내 매스컴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 졌다. 그만큼 중요 인물이고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내 고향 영광은 한갓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게 했다. 세계가 인정한 ‘예인’ 공옥진의 작은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불쌍한 노인네’로 생을 마감하게 놔둔 영광과, 나를 포함한 ‘영광 사람들’ 이라니….

40여 년 전 공 여사의 춤과 창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누구나가 그랬던 것처럼 기생 출신의 재주 정도로 그냥 보아 넘겼다. 병아리 기자 시절 그녀는 국내 최고의 무대 예술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병신춤과 1인 창무극의 창시자로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사람들은 그녀의 공연에 열광 했다. 만나기도 어려운 ‘귀하신 몸’이었다. ‘엄청나게 출세’한 그녀를 90년대 초쯤 영광의 상가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어렸을 적 그 아줌마는 상여를 놀릴 때 구성진 가락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녀의 인간적 진면목을 보았다.

그녀의 죽음을 맞아 언론은 ‘타고난 예인’이라며 대서특필 하고 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에게나 하는 언론의 예우다. 그런 인물을 내 고향 영광, 영광 사람들은 ‘불쌍한 노인네’로 밖에 대하지 않았다. 문화 예술에 대한 몰상식에 몸서리가 쳐진다. 문화 예술과 문화 예술인에 대한 이해가 이 정도인 상황에서 문예회관을 건립하고 문예 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달 하순 법성포에서 열린 단오제에도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몰상식이 ‘사건’을 빚었다. 축제를 빛나게 하기 위해 2억 가까운 돈을 들인 공연을 하면서 ‘국민가수’ 이미자씨를 초청 했단다. 여간 신경을 쓴 행사가 아니다. 거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다. 정작 ‘사건’은 이미자씨의 무대에서 벌어졌다. 전성기 못지않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박 준영 전남지사가 자리를 떴다. 그러자 인근 지역의 군수님들도 일어섰다. 수행원들과 ‘해바라기’들도 뒤를 따랐다.

어찌됐겠는가. ‘로얄석’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빠져 나가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노래가 중단 됐다. 이미자씨가 밴드를 멈추게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마 60년 가수 인생에서 스스로 노래를 도중에 중단한 것은 처음일 게다. ‘국민가수’로서 무시당했다는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으리라. 주민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하겠다고 나선 목민관들이 주민들을 무시하고 불쾌하게 했다. ‘국민가수’ 앞에서 지역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도지사를 비롯한 군수님들이 일으킨 이 ‘사건’ 소식의 맛은 정말 쓰다 못해 ‘퉤퉤’ 침을 뱉고 싶을 정도 이었다. 그들은 목민관이 아니라 권위 의식에 가득찬, 어쩌다 출세한 벼슬아치에 불과한 ‘민낯’을 주민들 앞에서 드러냈다. 아마 그들 ‘벼슬아치’들은 이날도 평소의 습관대로 자리를 떴을 게다. ‘표’를 위해 온갖 ‘행사’에 얼굴을 내려니 행사 도중에 자리를 뜨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이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고 괘씸하다.

이미자 님, 공 여사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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