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채/ 영광군농민회장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 미․소를 중심으로 한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일방적으로 그어진 38선은 1950년 한국 전쟁을 잉태한 불행의 씨앗이었다. 독립 국가를 운영 할 준비 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극심한 대립이 예고된 좌․우 이념 블록으로 양분된 남북은 피할 수 없는 충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북한 인구의 대다수(약80% 이상으로 추정)를 차지한 농민들의 토지 개혁을 둘러싼 날선 이해관계가 이념의 옷을 입으며, 세계사의 유례를 찾기 힘든 참혹한 내전의 형태로 우리 민족사를 피로 물들였으며, 그 비극의 깊이는 여전히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이후 남한은 4․19 혁명을 전후로 한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근대적 독립 국가를 형성해야 할 중요한 시기 대부분을 숭미 사대주의를 모토로 한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정치적 암흑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자식 교육에 모든 삶을 건 지혜로운 민초들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다지고 더불어 아직은 미완이지만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쌓아가는 위대한 저력과 역량을 발휘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꾸어 가고 있다. 한편 숨 가쁜 현대사의 질곡에서 신음 하던 농민들을 일깨우고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농민운동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정권의 살농 정책에 맞서 시작되었다.

농민운동의 소중한 싹을 틔운 기독교․가톨릭 농민회의 헌신적 희생 위에서 전국적 형태를 갖춘 전국 농민운동 조직(현 전국농민회총연맹)으로 뭉친 농민 진영의 첫 번째 과제는 일제 잔재인 수세 폐지 운동으로 촉발되어 전국 농민들의 압도적 지지와 참여 속에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였고, 이후 더욱 체계적인 대중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농촌복지의 상징인 통합의료보험 쟁취, 지방지치제 실현 등 농촌의 미래를 열어 가는 정치․사회 문제 해결과 나락 전량 수매 쟁취, 농업재해보상법, 농업 직불금등 농민의 삶을 책임지는 경제적 제 권리 운동을 쉼 없이 진행시켜 왔다.

그간 농민운동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업적과 성과를 쌓으며 희생하는 삶의 즐거움과 자긍심으로 농민들과 항상 흔들림 없이 동고동락해 왔다. 특히 UR, WTO, FTA로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경제 권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농업 자본가들의 농업 개방 압력에 맞서, 멕시코 칸쿤의 이경해 열사, 1000여명의 농민 결사대가 이룩한 WTO 반대 홍콩 투쟁은 실질적으로 WTO(세계무역기구)를 무력화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1000명이 함께한 삼보일배와 해상투쟁은 홍콩인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세계 민중의 높은 지지를 획득한 한국 농민들의 쾌거였다.

작금에 이르러 나라와 농업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헌신 해 온 농민운동이 뼈아픈 진보 진영의 분열로 야기된 통합진보당 사태 앞에 커다란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 현실이 되고 있는 현재, 한국 농민 운동은 그간 농민들과 함께 일구워온 값진 성과와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치와 목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다. 더욱더 단단하게 농민들과 연대하고, 진보적 농업 정책 실현과 지역 내 봉건적 잔재 일소를 통한 지역 사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해 나가야 한다. 희생 없이 발전하는 역사는 없다.

권력을 움켜진 기득권 집단은 오늘도 끝없이 긍정이 미덕이라는 주술을 외우며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민초들을 향해 전파하고 있다. 세상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무 일 없이 개인과 가족, 사회가 두루 평온 해 진다는 주술 말이다. 개인과 가족도 희생과 자기 부정을 통해 발전하고, 사회는 더더욱 저항과 희생 없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새로운 대안과 미래 비전은 불합리한 모순과 잔재를 일소해 가며 만들어져야 한다. 잘못된 사회 질서를 그대로 용인 한 채 제시하는 사회적 대안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에서……. 라는 슬로건으로 탄탄한 지역사회의 버팀목으로, 한국 농업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더욱 성숙한 농민운동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하며, 아직 독립에서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지 못한 민족의 역사와 농업․농민의 역사가 한 몸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는 8․15 광복절이길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