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야당의 중시조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탄생 시켰다. 민주당의 ‘위대한 탄생’이었다. 선생 덕분에, 민주당 덕분에 입신양명 했던 후손들이 선생의 분신인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다. 하늘에 있는 선생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저려 온다”

통합민주당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탄생과 함께 한다. 김성수와 송진우 등이 창당한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그 뿌리다. 친일‧지주 세력의 자금과 조직으로 이루어져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54년 구성된 호헌동지회로 시작돼 이듬해 창당한 민주당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승만과 대척점에 있었고 한민당 인사들이 다수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민당은 통합민주당 역사의 시작이다.

대통령 직선을 시작한 56년 신익희 후보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정권을 잡지는 못했으나 장면 부통령을 당선 시켰다. 4년후 치러진 대선에서도 조병옥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앞두고 사망하는 불운을 겼었다. 4‧19 이후 윤보선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5‧16 구데타로 61년 강제 해산되고 63년 재건, 65년 민중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55년 창당때부터 갈등을 빚었던 자유민주파(보수)와 민주대동파(혁신)는 5‧16 이후 구파와 신파로 갈린다.

구파는 한민당 계열 친일‧지주 세력인 조병옥‧윤보선‧유진산에서 김영삼으로 이어진다. 신파는 자유당을 반대 했던 종교인과 지식인 등 신흥 연합 세력이다. 장면‧정일형‧유진오에서 김대중으로 대물림 했다. 구파의 김영삼이 군사정권과 손을잡는 바람에 김대중이 민주당의 유일한 적자가 됐다. 김대중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돼 대한민국을 명실공히 민주공화국으로 탄생 시켰다. 민주당의 ‘위대한 탄생’이다.

김대중은 노무현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 하는 역사까지 쓰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자랑스럽지 못하게 태어나 반세기 동안이나 고난의 역사로 일관해온 민주당은 안타깝게도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다 실패한 후손 노무현에 의해 또다시 고난의 길로 들어 섰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불행하기 짝이 없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독재정권의 후예들은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와 행동을 버리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처지에 몰려 있다.

민주당이 ‘중시조’(中始祖) 김대중이 이룬 영광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독재정권의 후예들이 열어놓고 있다. 역대 어느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대선이 코앞이다. 반독재,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동시에 출마, 노태우에게 정권을 헌납한 ‘87년의 망령’이 떠올라서다. ‘역사 발전에 기여 하겠다’며 나선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나서 만만찮은 기세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이 나서면 87년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다. 민주당으로서는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 돼야 중시조 김대중에게 자랑스러운 후손으로 나설 수 있다. 정 안된다면 안철수를 민주당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중시조 김대중은 못난 후손들 덕분에 적자가 아닌, 생전에 잘 알지도 못하던 서자가 올리는 제삿밥을 얻어먹을 처지다.

저 세상에 가서도 평탄치 못한 것이 김대중의 운명인가. 태자가 되겠다고 싸우다 패한 형제들이 태자가 된 형제를 외면하는 바람에 큰집(민주당)이 망할 위기다. 서자가 올리는 제사상을 받을 수도 있다. 김대중의 혼령이 편할 까닭이 없다. 고인과 함께 울고 웃던 호남인들마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으니 얼마나 서운할까. 과거 선생의 그늘에서 누릴만큼 누렸던 후손들 몇몇은 ‘대화합’을 핑계로 본인의 분신인 민주당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민주당의 공천 덕분에 특권을 누리고 있는 후손들마저 민주당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쓰는 데는 관심이 없다. 하늘나라에 있는 김대중 선생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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