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엊그제가 설이었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눈 깜짝할 새 끝이 났다. 연휴기간 동안 아무리 나눠도 부족했을 가족과 고향의 진한 정을 뒤로 한 채 우리 모두는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음력 ‘설’이 지났으니 우리 민족에게 있어 진정한 새해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얼마 전, 설을 앞두고,「난원」의 노인복지시설 직원들이 모여 작년 한 해 동안 가슴에 남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시간을 가졌다.「난원」이 어르신들을 위해 여러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별별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우리의 작은 발길과 손길로 어르신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드린 사례가 제법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날의 아름다운 흔적과 자취는 새해를 출발하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무료급식소) 유모차를 밀고 어렵게 보행하시는 P어르신(여 · 82세)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어, 정말로 다행”이라고 한다. 무료급식소에 가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밥맛도 좋아 너무너무 좋단다. 그래서 자신 같은 늙은이를 위해 나라에서 점심을 주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니신다.

#2.(노인 부부에게 행복을 되찾아 준 ‘주간보호’) 올해 81세인 K어르신(81세). 5년 전부터 경도 치매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작년 3월부터는 배변실수마저 잦아지기 시작했다. 밥도 아내(79세)가 도와줘야 먹을 수 있었고, 집밖으로 나가 배회를 하여 위험천만한 경우도 여러 번 겪었다. 이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어야 했다.

1년 반이 넘어서면서부터 활달했던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경로당에 놀러갈 수도 없고, 읍에 나가는 것도 어렵게 되자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운 건 치매가 있지만 눈치는 뻔한 K어르신도 마찬가지였다. 부부의 대화는 끊겼고 집안에는 냉기가 자주 흘렀다. 7월에 K어르신의 사정을 전해 듣고 가정으로 찾아간 우리 센터 사례관리자는 단박에 장기요양등급 신청이 가능하다는 걸 파악하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사례관리자에게 지금껏 듣지 못했던 장기요양제도에 대해서 안내를 받은 아내는 뛸 듯이 기뻤다. 얼마 뒤 K어르신은 사례관리자의 도움으로 노인장기요양 3등급 판정을 받아 우리 센터의 주간보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K어르신은 흡사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기쁨에 들떠 주간보호센터로 왔고, 아내의 얼굴엔 예전의 웃음꽃이 돌아왔다. 아내는 “요즈음 맘껏 외출을 할 수 있고, 남편 역시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3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 위암으로 남편을 잃은 남천리의 A(66세)어르신. 큰 슬픔에 빠져 자신도 따라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남을 돕는 노인일자리사업에 계속 참여하면서 점차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슬픔이 조금씩 줄어든 게다. 어르신은 쓰러져가는 자신을 붙잡아 준, 노인일자리사업이 올해에도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4(독거노인 이야기) 여름 장마의 두꺼운 구름은 부엌과 단칸방이 전부인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살고 있는 A할머니(84세)의 집 위에도 몰려왔다. 지난해 7월, 104년만의 가뭄 끝에 내린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가 새벽부터 쏟아지면서 A할머니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집에 전기가 나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제 몸 하나 추스리기 어려운 팔순 노인의 입장에서 정전은 곧 외부와의 고립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마침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옳다구나 여긴 할머니는 전기 고장을 하소연했다. 사회복지사가 두꺼비 집을 열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어두운 방안이 이내 환해졌고 할머니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영광군의 독거노인 비율 35.9%. 두꺼비 집의 차단기가 내려 진 이 간단한 일도 대처하지 못해 불편을 겪는 어르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해결의 열쇠는 자주 찾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와 관심이 그래서 필요하리라….

노인복지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보니 이렇듯 어르신들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직업은 속일 수 없는가 보다. 설도 지나고, 입춘은 그보다 훨씬 전에 지나갔다. 곧 봄이 시작될 것이다. 왠지 몸과 마음에 생동감이 찾아 온 듯싶다. 이웃은 또 하나의 가족이다. 설날, 고향에서 가족들끼리 함께 주고받았던 그 따스한 정을 이제 주위의 이웃들과 나누면 좋겠다. 새해의 복이란 남에게 먼저 줄때, 나에게도 찾아오는 법이다.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늦게나마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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