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무엇인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일처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지긋지긋했던 장마가 끝이 나고,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지쳐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더욱 간절히 다가오는 게 있으니 그래, 바로 여름휴가다. 피기 전의 꽃이 훨씬 아름답듯, 고대했던 일이나 시간도 막상 닥쳤을 때보다는 그걸 맞이하기 전이 훨씬 짜릿하기 마련이다. 기다림의 순간들이 힘들면서도 즐거운 까닭은 묘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일 게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여름휴가를 떠올리며 자신의 고단한 심신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여름휴가를 더욱더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까?”라며 골몰하는 재미로 힘겨운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을 사람들. 때문에 여름휴가는 그 기다림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충분한 존재가 된다.

어릴 적, 필자를 들뜬 기다림의 세계로 빠지게 만든 대상은 세 가지였다. 각각 1년에 두 번씩 있던 소풍과 명절, 그리고 방학이었다. 평소 사먹기 힘든 음료수와 과자를 가방 속에 넣은 채 동무들의 손을 잡고 나서는 소풍은 학창시절의 가장 좋은 추억거리였다. 명절은 또 어떠한가? 새 옷과 새 신발을 신을 수 있고 평소 만지기 힘든 용돈도 두둑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자기 생일보다도 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학교에서 벗어나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방학은 그야말로 꿀 맛 같은 기간이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세월은 필자를 어느덧 40대 중반으로 만들었고 소풍과 명절, 방학이라는 세대 간의 느낌마저 바꾸었지만 아련한 추억만은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남겨 놓았다.

그렇다면 여름휴가는 직장인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먼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곳에서 세상살이의 근심을 잊고,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설과 추석 사이에 놓인 묘한 시기적 특성 탓에 부모형제들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5일 안팎의 제법 긴 여름휴가는 휴일을 기다리는 맛으로 사는 직장인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큰 선물이라는 점이다. 종합해보면 직장인에게 여름휴가란 어렸을 때의 소풍과 명절, 그리고 방학을 합쳐놓은 거와 다름없으니 그 큰 의미를 더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동시에 직장인들이 짚고 가야할 것도 있다. 여름휴가가 달콤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게 분주함과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여름휴가는 늘 쉬고 있는 사람이나 긴박감이 없는 사람에게 별다른 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따라서 오늘 아침에도 내게 갈 곳과 만날 사람과 할 일을 주는 직장이 있음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잘 먹고 잘 싸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듯, 성공적인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잘 쉬어야 한다. 잘 노는(쉬는) 사람이 일도 잘하기 일쑤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멕시코의 2,250시간에 이어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은 OECD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마냥 좋은 시대는 지나갔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쉬어야 한다. 이제는 일 뿐만 아니라 휴가를 보내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이유다.

1년 내내 8월만을 기다리며 바캉스를 위해서 산다는 프랑스 사람들. 그들의 여름휴가는 보통 한 달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은 휴가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도 휴가계획을 수립한다고 한다. 물론 프랑스와 우리나라와는 처지와 사정이 달라 비교가 곤란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새겨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이런 연유로 향후 사람의 행복도는 휴가와 여유를 어떻게 즐길 줄 아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우리 모두는 어김없이 노후를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된다. 100세 장수시대에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건, 인생 말미에 부여되는 긴 휴가를 보내는 거와 진배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노년기라는 휴가를 잘 보내기 위해선 지금부터 준비하고 계획해두는 방법 밖에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휴가도 즐겨본 사람이 즐길 줄 아는 법이다.

때문에 여름휴가는 지금의 나와 가족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성공적인 직장생활로 이끌어주는 에너지원을 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노년기를 미리 체험해보는 사전훈련이기도하다. 여름휴가는 그래서 우리에게 단순한 휴식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년에 딱 한번 주어지는 금쪽같은 여름휴가. 여름휴가를 좋은 추억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며 우리 모두 마음껏 누리고 오자. 여름휴가는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고, 엄연히 우리가 일한 대가가 아닌가! 그러니 열정적이고 재밌게 보내고 오자. 대신 직장으로 되돌아 와서는 또 열심히 일하자. 어디까지나 휴가는 일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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