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대통령의 존재감이 없다. 국정원이 몰고온 회오리 속에서 나라와 국민이 부대끼고 있다. 국민과의 대화에 인색하다. 선거 당시의 매력적인 약속도 시간과 함께 잊혀져 간다. 복지와 대탕평 인사는 애당초 수첩에 없었는가. 대통령에게서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예전엔 편 갈라 노는 놀이가 많았다. 빠르고 힘센 형이 있는 편이 되면 든든했다. 내편이 조금 밀려도 그 형이 나서기만 하면 판세를 바꿔버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믿음직한 지도자가 있는 집단은 이처럼 편안하다. 규칙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이 있다. 반대로 대장 격인 형이 시원찮으면 불안하다. 놀이 자체의 즐거움도 줄어든다. 결국 놀이는 대장 형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 이긴다.

오늘 내편인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장 격인 형, 즉 지도자의 존재감이 없다. 전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믿음직한 대장의 역할은 누가 해야 하는가. 당연히 대통령이다. 3권이 분립 됐다고는 하나 권한이나 역할, 전통으로 미뤄 대통령을 첫 번 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권력을 위임 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대도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지도자 다운 존재감이 없다. 왜인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대통령들은 나라의 중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 했다. 물론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주요 사안에 관해 자신의 견해와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책과 관련, 구체적 지시를 한 것 같은 기억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나라를 가장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은 국정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짓거리를 국정원이 했다’ ‘안했다의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야당이 거리로 나서며 국회마저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대통령과 무관치 않은 사안인 만큼 당연히 국민이 납득할 해법을 제시했어야 옳다. 딱 한 마디.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말 뿐이다. 그러니 나라가 10개월간 국정원 관련 사안으로 시끄럽기 짝이 없을 수 밖에.

정치판이 온통 국정원 사건으로 세월을 보냈다. 거리로 나섰던 야당이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로 복귀 했지만 여전히 이슈는 국정원이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 한마디만 있었다면 국정원 사건은 이미 국민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시간이 흘렀다. 말을 아낀 덕택에 대한민국은 10개월간 국정원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라 전체가 국정원이 몰고 온 회오리 속에서 부대끼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의 나와는 관계없다는 식의 방관이 지극히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나라로 만들고 있다. 10개월 만에 국무총리가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 하겠다고 밝혔다. 생뚱맞다. 솔직히 말하면 총리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총리의 말을 뒤집어보면 지금까지는 철저히 수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집권 세력과는 코드가 맞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검찰총장,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며 반발한 수사 팀장은 이미 수사 라인에서 제외됐다. 정치권은 자기들이 원하는 수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국민과의 대화도 인색하다. 자연히 친근감도 떨어진다. 새로운 맛도 없다. 선거 당시에 제시했던 매력적인 약속은 시간과 비례해 잊혀 가고 있다. 복지가 그렇고 대탕평 인사가 그렇다. 복지는 예산이 수반되는 문제라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치자. ‘대탕평 인사는 의도적이다. 애당초 대탕평은 박 대통령의 수첩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남이가?”의 주인공 김기춘의 기용이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대통령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다.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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